길 위에서 길을 걸으며 인생의 길(도리)을 깨닫다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4/07/09 [17:12]
[한유진의 유람일지(儒覽日誌)] 충효예길

길 위에서 길을 걸으며 인생의 길(도리)을 깨닫다

[한유진의 유람일지(儒覽日誌)] 충효예길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4/07/09 [17:12]

[한유진의 유람일지(儒覽日誌)] 충효예길

 

길 위에서 길을 걸으며

인생의 길(도리)을 깨닫다

 

 

주말마다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 조용한 날이 없는 정치계,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 비용이 가장 높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 따르면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분석결과 연평균 2327,000억 원가량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10%에 해당하니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국민이 갈등으로 인한 경제성장 저하, 국가재정 손실 등 경제적 비용을 그만큼 부담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 수천만 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나라에서 갈등은 불가피하겠지만, 사회 각 분야의 갈등 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절충과 타협을 덕목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 “4차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 문제나 병폐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박사님들의 혜안(慧眼)을 의뢰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생명 존중 및 평화를 위한 행보 등 이타적인 선비의 삶을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단호하게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정재근 원장의 대답은 명료했다. “우리 몸속에 DNA로 이미 수천 년 동안 체화되어 있는 유교의 가르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에 이번호부터 <한유진의 유람일지(儒覽日誌)>를 게재한다. 

 

 

길을 만드는 사람

 

한국유교문화진흥원(원장 정재근, 이하 한유진)은 국정과 도정에 부응하는 유교문화 및 국학 진흥 지식플랫폼 구축이라는 목표 아래 충청지역의 유교문화유산을 활용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K-콘텐츠 확산, 전통문화유산의 보존 및 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 추진, 충청남도의 가치 있고 품격 있는 삶 구현을 위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관광 진흥 추진 그리고 한유진의 기관역량 강화를 통한 충남 유교문화 발전 기반 조성 삼박자를 갖춘 사업이 바로 <충효예길>이다. 유교문화 자원의 보존과 활용으로 추진 중인 <충효예길>은 충청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진흥과 결을 같이 한다.

이렇듯 <충효예길>을 물리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 가며 살아 있는 존재의 흔적이 유형·무형의 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흔적은 글로 남기고 길로 남겨진다. 우리 시대 길을 걷는 행위는 문화적인 행위이며, 역사적인 행위로 남겨질 것을 고려해 길 위에서 만나는 유·무형의 유산을 이야기로 엮어 길을 걷는 행위에 대한 시대 감성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길에 관한 생각이 <충효예길>로 이어져 한유진의 역량을 담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가고 싶은 길로 만들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

 

충효예길은 첫째, 논산의 지역 특성을 바탕으로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충예 콘텐츠가 집약된 길 개발을 통해 유교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일상에서 실현하고, 둘째, 지역소멸의 위기에서 기호 유학의 중심지인 논산의 유교문화유산과 기존 논산길을 연계하여 맞춤형 문화관광자산 개발과 홍보 확대를 위해 개발했다. 무엇보다 충효예길은 전통문화유산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현대화대중화와 K-유교 장르 개척을 위한 융복합, 세대공감, 현대화 등 한유진의 미래 비전 실천을 위한 사업이다. 그리고 논산이 보유한 다양한 유교문화유산자원(계백장군과 사육신을 배향한 충곡서원(), 효자마을과 효자 강응정을 배향한 효암서원(), 예학의 종장 김장생(1548~1631) 등을 배향한 UNESCO 세계유산인 돈암서원()과 탑정호)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여 지역 특색을 살린 맞춤형 문화관광자산 개발이라는 데 의의가 크다.

한유진은 K-콘텐츠로서의 유교문화를 꾸준히 부각하며, 작년 하반기부터 논산지역의 고택과 서원, 구곡을 주제로 선비 삶의 동선을 따르는 답사프로그램 <유람일지(儒覽日誌)>를 운영 중이다. 문화유산 활용 사업이 일회성 체험 위주의 양적 관광사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전통문화의 교육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자 지속 가능한 걷기 여행길이라는 목표로 유교문화의 정신적 가치인 충()()()를 주제로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충의 길은 충곡서원, 계백장군 묘역, 충장사(忠壯祠)로 이어지는 백제의 계백과 조선의 사육신(死六臣)의 연결고리로서의 연산 지역이 부각되었다. 효암서원, 효자 강응정의 정려, 병암유원지로 이어지는 효의 길은 현재도 논산천에서 살아 헤엄치는 효자고기 을문이로 이어지며 가야곡면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살렸다. 돈암서원, 모선재(摹先齋), 양천허씨정려(陽川許氏旌閭)로 이어지는 예의 길은 익히 잘 알려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돈암서원이 예학 정신이 깃든 기호 문화의 성지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충의 길

백제의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로 신라군 5만 명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최후를 맞이하여 충신의 표상이 되었다.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인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계백장군 묘역을 조성하고 위패와 영정을 모시는 사당인 충장사를 건립했다. 옛 문헌에서 계백의 목이 떨어졌다고 전하는 수락산과 시신을 급히 거두어 가매장했다는 가장곡이 바로 이 부근이다.

충곡서원은 계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을 모시고 있다. 1692(숙종 18)에 건립된 후, 1700(숙종 26)에 연산의 유생 김득겸이 상소한 내용을 보면 연산 지역이 계백, 성삼문 등 충신들의 유풍과 공적이 남아있는 곳이면서 사람들이 80~90년 전부터 지속해서 건립을 요청한 지 오래되었다.”라는 점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연산지역을 충절의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계백이 죽고 백제가 망한 지 천 년이 넘게 흐른 조선 중기에 이 지역에서는 왜 조선의 충신 사육신만이 아니라 계백장군도 함께 모시는 서원을 만들었을까요? 오랜 세월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백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왕조와 시대를 초월하는 소중한 가치임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효의 길

500여 년 전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 살던 강응정은 개장국이 드시고 싶다는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 추위를 뚫고 20리 길을 걸어 양촌장에 갔다. 어렵게 구한 개장국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길에 빙판에 미끄러져 국을 쏟았다. 불효를 한탄하던 중 넘어지면서 깨진 얼음 구멍으로 작은 물고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그것을 잡아 탕을 끓여 드렸더니 어머니 건강이 좋아졌다. 이때 잡은 물고기를 을문이혹은 강효자 고기라고 부르며 지금도 탑정호 상류 병암유원지 인근 논산천에 서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나이 17세에 부모가 병에 걸리매, 항상 모시고 간호하면서 밤이 새도록 자지 않고 보살피며, 부모가 죽자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예절을 다하였으며, 소금과 소채를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나라에서는 효자 강응정의 효행을 기리는 문(정려)을 지어주었고 성종은 친필 현판을 내렸다. 효자 강응정을 모신 효암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우암 송시열이 1713(숙종 39)에 중건을 주창하여 다시 세워졌다.

효자를 모신 효암서원, 지금도 살아 헤엄치는 논산천의 효자고기, 500년이 넘게 후손이 살고 있는 함적리 마을의 존재는 우리에게 가 동화 속의 이야기나 현실과 동떨어진 먼 옛날의 가치가 아닌 지금 우리 옆에 살아 숨 쉬는 실체임을 보여준다. 

 

예의 길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로서 율곡의 학맥을 계승했다. 조선시대에 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규범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가 많이 무너졌다. 고향 논산에서 제자를 가르치던 김장생은 예를 다시 세우지 않고는 나라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예학을 연구, 정리하여 무너진 사회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상례비요, 가례집람 등의 예서를 편찬하여 예학의 기본을 세운 김장생은 예학의 종장으로 우뚝 섰다. 이런 연유로 논산은 예학의 본향, ‘예가 스민 고장으로 불리고 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과 그의 제자인 김집, 송시열, 송준길을 모시는 서원이다. 1634(인조 12)에 창건되었고, 1660(현종 원년)에는 돈암(遯巖)’으로 사액을 받았다. 돈암서원은 건축 구조 측면에서도 ()’를 잘 구현한 서원이다. 김장생이 고대 예서들을 정리하면서 나온 여러 내용이 건축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응도당은 고대 예서에서 나오는 하옥 제도를 본받아서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당의 이름을 예를 숭상한다는 뜻의 숭례사로 지은 것에서 돈암서원이 철저히 를 강조하는 서원임을 알 수 있다. 1871년 서원 훼철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201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어지는 길과 함께 걷기

 

한유진은 충효예길 개발을 위해 한유진 선비회원과 논산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지난 530일 시범적으로 걷기 대회를 개최하여 충효예길에 대한 의미, 가치 발굴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향후 단순한 장소 활용이 아닌 역사적 사료(연재 송병선 황산유람기참고)에 근거하여 해당되는 코스와 논산의 다양한 유교문화유산 자원을 토대로 강경(죽림서원)성삼문묘양촌장터함적리(효자마을)효암서원병암유원지김장생묘고정리(모선재, 양천허씨 정려)돈암서원백제군사박물관충곡서원탑정호수변생태공원탑정호 출렁다리(41km)의 코스를 기본 안으로 구상하고, 직접 걸어보며 코스를 적절히 구성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길 운영을 통해 한유진 교육생과 논산시민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일회성 단순한 길 걷기 행사가 아닌 유교문화 연계 행사와 교육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하고자 한다. 한유진의 충효예길 개발과 걷기 대회, 체험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 극복은 물론 논산의 대표적인 행사와 연계하여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길이 되길 기대한다.

함께 걸어 완성할 <충효예길>을 그려보며 오늘 우리의 걸음걸음이 길과 길을 잇고 길 위에서 나눈 이야기가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어 과거로부터 받은 충()()()가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 되길 희망한다.

 

- 한유진 K-유교활용부 책임연구원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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