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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인생박물관] 포스코아파트 한수교 어르신 "인생유전 속에서 양심껏 살았으니 자족(自足)"
기사입력  2021/05/12 [17:13]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계룡인생박물관] 포스코아파트 한수교 어르신

인생유전 속에서 양심껏 살았으니 자족(自足) 

 

5월 8일 어버이날 오전, 두마면 팥거리에 위치한 충남이발소 앞에서 말끔하게 머리를 하신 한수교(韓壽敎, 83세) 어르신을 만났다. “어버이날 부모를 찾아올 자손들에게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머리를 다듬으셨다”고 입을 떼셨다. 자녀와의 만남에도 신경을 쓰는 그의 인생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왜놈들 만행을 보고 자란 어린 시절

 

그의 고향은 산 높고 물 맑은 충북 옥천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가의 자손이었다. 부친도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글도 꽤 읽는 선비였다. 한수교 어르신은 그런 집안에서 2남3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오래 살라고 이름에 목숨 수(壽) 자를 넣었다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애를 낳으면 홍역 등으로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는 “여지껏 무탈하게 살고 있는 것이 부친께서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단다.

1938년생인 그는 해방 전의 일제 왜놈들의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가을 추수 때가 되면 공출이라고 해서 집집마다 가마니배당을 했습니다. 이 집은 몇 가마니를 공출하고 저 집은 몇 가마니를 공출하고 정해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수확이 적으면 그 가마니 배당대로 쌀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놈들이 와서 긴 장대에 낫을 묶어 지붕에 새로 해 얹은 초가 짚을 벗겨내는 겁니다. 아주 못된 놈들이지요.”

이러한 왜놈들의 만행을 어린 시절 보고 겪었던 그는 ‘나라 없는 설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며 ‘다시는 그런 일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인다.

1945년 드디어 해방을 맞았지만 그의 부친은 그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병을 얻어 그 이듬해 돌아가셨다. 그 해 9살이던 그는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일본말보다는 한글 공부를 꾸준히 해왔기에 어렵지 않게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5학년 때에 6·25 전쟁을 겪었는데, 인민군들이 동네에 들어와 쑥대밭 만드는 현장을 보아야만 했다. 

 

 

 

 

안 해본 일 거의 없는 인생유전(人生流轉)

 

그는 1960년 7월 육군에 입대하여 경기도 양평에 있는 공병대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1963년도에 만기 제대를 한 그는 상경하여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게 된다.

그가 첫 번째로 하게 된 일은 남대문에 있는 일명 시계골목에서 시계 장사를 한 것이다. 시계에 대한 기술이 없던 그는 기술자를 두고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장사가 잘 되어도 막상 그에게 떨어지는 이문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그가 데리고 있던 기술자에게 크게 사기를 당하여 시계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도 큰 경사가 있었다. 유청자(柳淸子, 81세) 님을 만나 결혼하였고, 1남 3녀를 두게 된 것이다. 

1967년 그가 두 번째로 도전한 일은 직장생활이었다. 롯데라면에 입사한 그는 영업 파트에서 판촉 일을 하였다. 그곳에서 5년 정도 일을 한 그는 1972년도에 사직하고 고향 옥천으로 내려오게 된다.

10년 이상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온 그는 포도농사, 딸기농사도 지어보고, 석유장사도 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이것저것 여러 일에 손을 댔다는 것은, 딱히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토종닭 백숙 등을 파는 가든식당을 개업하여 음식장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을 하면서 큰 돈은 못 벌었지만 그런대로 장사를 꾸준하게 했다. 2008년 계룡으로 이사를 오기까지 10년을 이어왔다. 

 

첫눈에 맘이 든 계룡에서 인생2막

 

대전에 나와 살 생각을 하고 집을 구하던 중, 아들이 ‘계룡에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으니 구경 한 번 가자’고 권했다. 그는 “시골서 또 시골로 이사를 가느냐?”며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막상 계룡에 와서 아파트를 구경하니 너무 좋아서 한 달 만에 이사를 왔다. 그때가 2008년도이다.

“대전의 아파트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는데, 계룡에 와서 포스코 아파트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구조도 마음에 들고 자재도 고급이고 아파트 정원도 아름답고 한 눈에 반했지요. 지금까지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아파트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노인회 회장도 맡아서 일을 했다. 또 노인복지관에서 일자리사업으로 결성된 예술단에 들어가 요양원 등에서 연극 공연을 약 4년 동안 했다.

현재는 하천(두계천) 생태환경사업에 참여하여 월 10회 환경정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매주 노인대학에도 나가고 있다. 그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데, 옥천에 있을 때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았다고 하니 그의 신앙생활 구력도 30년이 넘는다. 그의 세례명은 안드레아이고, 아내의 세례명은 루시아이다.

그는 1983년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장파열이 일어나 큰 수술을 받고 고생한 적이 있다. 2013년도에는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현재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며, 가벼운 걷기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해나가고 있다.

“인생을 돌아보니 고생 좀 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이 힘들었지요. 자식들한테 빚이나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했지, 별 돈도 벌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양심껏 살았으니 잘 살았다고 생각해요.”

대전에 거주하는 아들은, 직장이 계룡에 있어서 부모님 집에 자주 들른다고 한다. 큰손자는 금년에 한의대를 졸업하여 현재 완도보건소에서 근무중이고, 작은 손자는 교원대 4학년에 다니고 있다. 자식 자랑은 어버이날 몰려오는 효자효녀들라는 데까지 이어지며, 이발하며 나온 말쑥한 얼굴에 엄지척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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