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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후배 녀석의 글이 올라왔다. ‘신천지에 대응하는 법’, ‘신천지의 폐해’, 그리고 아는 목사님의 글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밑에 무수히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댓글을 읽다가 글을 남긴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신천지를 욕할 것이 아니라, 신천지를 대응하지 못하는 교회가 문제고 교인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목사가 문제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교회 수십 년 다닌 사람들이 흔들린다는 건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 신천지가 종교를 사칭한 사기집단이던, 잘못된 교리를 가진 사교집단이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종교는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세계관은 만들기도 힘들지만 바뀌기도 힘들다. 그런데 수 천 년을 이어 온 기독교 전통이 소위 사교 집단이라는 신천지에게 속수무책인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기독교 자체가 외부적 공격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 교회가 그렇다. 한창덕이 말하는 신천지의 창조론을 보자. 우선, 세상은 영계와 육계로 창조되었으며, 영계에는 영이, 육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영계와 육계를 하나로 만들어 영과 육이 함께 살게 하려 했으나 아담의 배도로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창조를 통해 시대마다 인간과 함께 하려고 했다. 신천지의 창조론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창조론과 사뭇 다르다.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마치 환웅과 세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다른 교리를 가진 신천지가 어떻게 한국교회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까? 한국 교회의 수준은 창조론과 신천지의 창조론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낮은 것일까? 신천지가 한국교회에 끼치는 영향은 한국교회의 아픈 곳을 드러나게 한다. 첫째, 이해와 신앙을 싸우게 만들었다. 한국교회에서 잘 믿는다는 것은 목사의 말을 잘 믿고 따르는 것과 같은 말이다. 개인에게 의존적인 신앙은 자신의 신앙을 가질 수 없게 한다. 목사가 누구냐에 따라 교인들의 수준이 달라진다. 기성교단에 소속된 목사가 공인되지 않은 내용을 가르쳐도 교회의 성격상 비판적일 수 없다. 이런 토양에서 신천지가 자란다. 무비판적인 신앙이, 즉 덮어 놓고 믿는 행위가 문제의 근원이다. 둘째, 잘못된 성서관이다. 신천지가 천주교(구교)보다는 개신교(신교)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서가 무오하다는 주장은 성서에 무한한 권위를 인정하지만 자칫 성서를 신격화하고 우상화할 수 있다. 이렇게 무오한 성서는 어떻게 짜 맞추어 말하든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러니까 한국교회 교인은 비판적으로 성서를 읽기보다는 성직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자칫 역량이 부족한 성직자에게서 영향을 받은 신자들은 잘못된 가치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읽을 능력도 고민할 힘도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천지 현상은 무비판적 순응을 강요한 한국교회가 낳은 문제이다. 남 탓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비단 무비판적이며 순응적인 태도는 교회에서만 양성되는 게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란 말은 우리네 현실을 잘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말정산에 세금 환급을 얼마나 받을까 마음이 부풀어 있었지만, 막상 계산서를 받고 보니 여느 때와는 달리 환급을 받는 이들이 드물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월급쟁이가 봉이냐”란 말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나름 세금을 많이 떼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박근혜가 복지를 많이 해서 세금을 많이 뗀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형, 신문도 안 봐?” “복지 정책 뒤로 가는 거 말이야.”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얼버무린다. 잠시 다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걸, 수십 년 살아온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다.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누가 말하면 듣고, 옳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살았다. 목사가 말을 하니까, 정부가 말을 하니까, 선생이 말을 하니까 옳다. 누구 입에서 나오느냐가 중요하지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드러난 일’로 ‘속’을 볼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남은 나를 보는 거울이다. - 김원혁 (두 아이의 아빠고, 맞벌이를 하는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한때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때려치우고 현재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공부는 남들 하는 만큼 해서 석사학위 정도는 갖고 있다. 취미를 넘어 최고의 시사평론가를 꿈꾸며 여기저기 글을 남기고 있다. 이번 호부터 논산계룡신문 시사평론을 연재하기로 했다. 그의 글쓰기는 날카롭고 통쾌하다.) <저작권자 ⓒ 논산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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