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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도회를 떠돌아다니며 하릴없는 시간만 보내다가 내가 논산에 돌아오게 된 것은 거의 40년 만이다. 대학교 다니던 그 시절에 아버님이 논산교육장으로 봉직하고 계셔서 가끔씩 부모님 뵈러 논산에 들릴 때만 해도 논산은 그저 우리 아버님이, 할아버님이, 조상들께서 사셨던 곳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 우연히 찾은 돈암서원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뵈면서 자연스레 아버님 근황을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중에 생각지도 않게 돈암서원 장의가 되었고 급기야는 그해 겨울에 원장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가 맡아 하던 유네스코 등재추진 및 대외 협력사업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평생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서원 경영을 맡게 되자, 두려움과 책임감이 몰려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구시대의 유물이라 생각했던 서원에서, 내가 할일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 소중한 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원을 대표해서 전국을 다니며 다른 지역 서원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내가 몰랐던 돈암서원의 진가를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간에 무지했던 부끄러움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논산이 어떤 곳이고, 왜 우리 조상들은 논산을 사랑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문화재활용프로그램 = 인성교육
나는 돈암서원, 연산향교, 강경근대문화거리 등을 포함한 논산의 많은 문화재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치원으로부터 초·중·고 학생들에게 문화유산 방문 프로그램으로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4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께서 논산에 정착하시며 서원과 향교 등을 통해 국가의 무너진 도덕정신을 세우고자 예학을 정립하고 교육시키셨던 것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 시절 학문이 오늘날 다시 인성교육이란 제목으로 청소년교육의 필수과목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선조들의 지혜와 예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또한 자랑스러움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다. 이제 논산의 문화재활용사업은 타 지역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전국 최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논산에는 향교 3곳(노성향교, 은진향교, 연산향교)을 비롯하여 서원이 10곳(돈암, 노성, 금곡, 봉곡, 조정, 죽림, 충곡, 행림, 효암, 휴정), 궐리사 1곳, 사우 4곳 등 ‘선비의 본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조선시대 교육과 존현의 제사를 담당하는 교육기관이 지금도 그 면면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강경에는 죽림서원과 임리정, 팔괘정,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나는 이러한 문화재들을 보면서 앞으로 논산이 풍부한 문화자산을 잘 활용하여 대한민국 정신교육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메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논산에는 4계절에 걸쳐 딸기, 젓갈, 고구마, 대추 축제 등 많은 문화행사가 열려 논산의 멋과 맛, 흥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 훈련소 부근에 밀리터리 테마파크가 문을 열어 청소년들이 게임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마을마다 동고동락이란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젊었을 때 글을 못 배우신 어르신들이 한글도 배우고, 여가를 이용하여 놀이도 즐긴다. 보건소에서는 어르신들을 찾아와 건강 검진과 치료도 해준다.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자랑스럽기만 한, 살맛나는 논산이다.
세상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청정 논산으로 돌아와 어린 학생들과의 교육을 통해 지내는 이 순간이 나는 얼마나 보람 있는지 모른다. 감사할 뿐이다. “지금 있는 모든 것이 내게 족하나이다” 라고 고백하며, 오늘도 나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사랑하고, 또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묵묵히 내 고향 논산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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