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달 특집,“꽃다운 젊음 국가와 민족위해 바친 용사들 못잊어”

호국의 달에 들려주는 6.25당시 ‘두계 전투’ 이야기

운영자 | 기사입력 2010/06/01 [09:19]

호국의 달 특집,“꽃다운 젊음 국가와 민족위해 바친 용사들 못잊어”

호국의 달에 들려주는 6.25당시 ‘두계 전투’ 이야기
운영자 | 입력 : 2010/06/01 [09:19]
60년전 계룡대 지역 공비토벌작전 주인공 남송 이전구 옹(84)

계룡대가 위치한 충남 계룡시 두계리 일대는 과거 6.25 전쟁 당시 북괴군 패잔병들로 구성된 공비들이 갖은 만행과 약탈을 일삼으며 북상하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충남 빨치산 사령부 예하 5개 부대 중 하나인 대둔산 일대의 북괴군 패잔병들은 논산 성동주민 120명, 논산 병촌 주민 500여명 학살 등 만행을 자행하며 호남의 교통 요새지이며 주민 및 피난민이 대거 피난하여 있는 두계지역 습격이 예상됐다.

이때 아군은 북괴 패잔공비들의 북상을 차단하고 주요 전략적 거점인 두계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향토방위대를 모집·방어부대를 편성했다.

이 작전에는 두계리가 고향인 이전구 경사가 두계 방어작전의 토벌대장으로 임명·참전하게 되었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토벌대장 이전구 대장은 1950년 10월 14일 두계리에 도착하자마자 막역지우인 친구들과 고향의 선·후배, 그리고 젊은 청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100여명의 향토방위대를 조직했다.

향토방위대를 조직한 이 토벌대장은 대원들과 함께 경찰국으로부터 LMG1정과 M1소총 40정을 지원받고, 마침 대전방면으로 이동 중인 미군에게 무기원조를 요청해 수류탄 50발을 얻었으며, 개인무기인 죽창 등으로 무장했다.

1950년 11월 16일 새벽 1시가 조금 지날 무렵 매복한 진지로 찾아드는 적 1개대대 병력과 필사의 전투를 벌이며 날이 밝도록 최후까지 싸웠다.

이 전투에서 적의 군관 등 북괴군 수 십 명을 사살하고 게릴라대장 이원종을 위왕산 바위까지 추격해 자결케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아군의 피해도 있었다.

이 고지 근무자 김영준, 김영길, 김명수, 김용현, 오복수, 박찬기 등 6명의 향방대원이 꽃다운 젊음을 국가와 민족에 바쳐 장렬히 전사했다.

남송 이전구회장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에 지금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두계 전투 참전전몰호국용사 추모비는 이후 1995년 4월 두마면장 임재신을 비롯해 지역유지들이 ‘남송 이전구 선생 전공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임좌순 계장이 지은 비문과 성금을 모아 그해 6월 25일 제막한 것이다.

또한 1997년 6월 13일 국방부로부터 두계전투에서 전사한 호국용사들에 대하여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동시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초야에 폐허로 돌보는 이 없이 묻혀있던 호국용사 6명의 분묘를 유가족들과 군병력이 수습 국립대전현충원 경찰관 묘역에 안장됐다.

1997년 6월 29일 남송 이전구회장은 사비와 하태환 대전지방보훈청장의 후원으로 전몰호국용사추모비를 수변공원에 건립하고 현재까지 해마다 추모행사를 진행해 왔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계룡일보에서는 남송 이전구 회장으로부터 이들의 호국의지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6,25 두계 지역 공비토벌사에 대해 들어보았다.
 
▲당시 공비의 규모와 공비들의 만행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금산 지구에 충남 빨치산 사령부를 둔 공비들은 5개 부대로 무장공비 765명과 비 무장공비  620명이 있었다. 그들은 금산, 논산 등 충남지구에 출몰해 약탈을 일삼았는데 특히 논산에서 144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금산경찰서를 습격 16명을 논산 성동지역 주민 120명을 학살하는 등 갖은 만행을 자행했다.”
 
▲두계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펼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계지역은 공비들이 북상하는 유일의 통로이며 호남에서 북으로 연결되는 주요 진출로였다. 이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장군의 의병들이 전라도에서 연산으로, 두계에서 금산으로 이동했던 통로이다.”
 
▲향토방위대의 규모는?
“본인의 고향이 두계리다. 당시 경찰관 이었던 본인이 자원해 두계방어작전의 향토방위대를 만들고 지역선후배 100여명을 중심으로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향토대원들은 예상접근로에 해당하는 고지에 5인 1개조로 개인호를 만들고 개인무기로 죽창을 준비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음식을 준비해 주고, 각종 작업도구를 마련해 주며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줬다.“
 
▲당시 전투를 상황을 말씀해 주시죠?
“1950년11월 16일 새벽 1시께 매복중인 진지로 찾아드는 적 1개 대대병력과 교전을 벌였다. 게릴라식 야간 침투에 능한 적과 필사의 항전을 전개해 적의 군관 30여명을 사살하고 게릴라대장 이원종을 위왕산 바위까지 추격하자 자결했다. 그러자 적들이 크게 불리함을 느끼고 50여명의 부상자를 이끌고 대둔산으로 퇴각했다.”
 
▲두계 전투를 발굴하게 된 계기는?
“ ‘32 사단’과 ‘지역 방위협의회’ 등 민, 관, 군 통합 주요지휘관, 관계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1995년 6월 20일 두계지역 발굴에 대한 내용의 토의가 오갔다.
그것을 계기로 그해 6월25일 6.25전쟁 45주년을 맞아 두계지역 공비토벌작전 전공비 추진위원회가 생기게 됐고 1998년6월 29일 6.25 참전 전몰 호국용사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그동안 추모사업 활동을 어떻게 해오셨는지요?
 “1998년 추모비 건립 후 정부의 지원없이 본인이 소정의 비용을 들여 해마다 추모행사를 진행해 왔다. 올해에도 오는 5일 오전 10시에 수변공원에서 추모식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추모제에 계룡시민들이 많이 참석해 주시길 당부 드린다.“ 
 
▲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  
“올 3월 경 보훈청을 방문해 추모 행사 경비 일부를 지원 바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지난 13년동안 내 사비를 들여 추모행사를 해오던 것을 뒤 늦게 보조 받으려 했던 것이 슬프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추모행사를 마치고 내년부터는 계룡시나 재향군인회에서 이관 받아 추모제를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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