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인생박물관] 양종남 계룡주공아파트 노인회장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1/02/24 [14:42]

[계룡인생박물관] 양종남 계룡주공아파트 노인회장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1/02/24 [14:42]

[계룡인생박물관] 양종남 계룡주공아파트 노인회장 

도전과 성공으로 점철된 삶, 그 뒤에는 신의 은총이 

 

숱 많은 까만 머리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양종남(梁鍾南, 75세) 회장, 누가 그를 70대 중반의 노인으로 보겠는가? 얼핏 보면 그는 50대 무술 고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그가 얼마나 유머러스하고 배려심 많은 따뜻한 이웃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런 그를 계룡 주공아파트 노인회에서 만났다.


 

 

대학 포기하고 들어간 군대

 

그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 장항읍이다. 일제강점기 때 장항 부둣가에서 쌀을 배에 싣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반장으로 있던 아버지, 바닷가에서 조개 캐고 남의 농사일 도우며 생활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모든 가정이 그러했듯, 그의 집안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화목한 가정 분위기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곳 장항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농대 원예과에 8:1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러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때가 1965년도이다.

그는 여산에 있는 제2하사관학교에 입교하여 8기로 졸업하고 논산훈련소 내무반장으로 2년간 복무하였다. 그 후 그는 논산훈련소 내에 있는 방송국에서 1976년도까지 근무하게 된다.

“당시 군에 있는 방송국은 국방부와 논산훈련소 두 곳뿐이었습니다. 저는 정훈병과로 방송국의 전반적인 관리 업무를 보았지요. 그 당시 코미디언 뽀식이 이용식 씨와 문화부장관이었던 유인촌 씨가 아나운서로 있으면서 함께 근무했지요.”

그러던 중 방송국 옆 사무실인 법무부 근무 선배가 ‘사업을 하게 되었다’며 급히 전역을 하는 일이 생겼다. 그 선배가 떠나며 그에게 법무 관련 서적들을 주면서 ‘1년만 시험 준비를 해보라’고 적극 권했다. 그는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그 책들을 보며 공부했다. 1년 후 시험을 보게 되었고 그는 11명이 응시한 그 시험에서 당당 1등으로 합격하였다.

그 결과 논산훈련소 법무부에서 1994년까지 18 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이후, 원사로 진급한 후에는 육군본부 법무감실에서 수사주임으로 근무하다 37년간 군생활을 마감하고 2001년 11월에 전역하였다.

 

방송국, 법무부 등 유별난 군경력

 

그의 군생활은 조금 남달랐다. 군 방송국에서 근무했고, 또 법무부에서 수사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내세우고 싶진 않지만, 보안사에서도 한동안 근무했었다. 언젠가는 장교에 뜻을 두고 임관시험을 보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군의 모습과는 좀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한 것이다.

그가 법무부에서 수사할 때에는 잊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었다. 국군병원에서 3명의 탈영병이 택시를 탈취하여 운전기사를 살해하고 과수원 복숭아밭에 유기한 후 충북에 위치한 한 댐에 차를 버리고 도주했는데, 그들을 끝까지 쫓아서 잡아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탈영과 살인을 했으니 중범죄자들이지요. 그 탈영병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이들을 면회 왔었답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아들은 아들인 모양입니다. 그 아들에게 빵을 먹이며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그 아비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천륜은 막을 수 없는 모양입디다.”

또 방위병 3명이 은진면 야산에서 한 여성을 강간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어 무척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들은 결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무장탈영병이 훈련소버스를 탈취하여 도망갔는데 추풍령까지 기동타격대가 쫓아가서 잡아오기도 했단다. 그 밖에도 숱한 사건사고들을 접하고 처리하면서 “인생공부 많이 했다”고 술회한다.

 

 

 

 

단란한 가정, 아내 위한 기도

 

그는 1970년대 초 중사 때 보안대에서 잠시 근무를 했다.  전라북도 화산, 웅포 그리고 충청남도 부여 양화 등에서 고정간첩 색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때 양화에서 운명의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지금 그의 아내 강성옥(姜聲玉, 70세) 님이다. 그는 그녀와 연애 끝에 1972년 1월 17일 결혼한다.

결혼 초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차렸는데, 군인의 박봉으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그 어려운 시절을 사랑으로 잘 이겨내고 예쁜 딸을 얻게 된다. 현재 그 딸도 이미 장성하여 군인가족(사위가 해군 장교)이 되어 계룡에서 함께 살고 있다.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당연히 저도 젊었을 때는 힘들었지요. 지금은 딸 가족도 가까운 곳에 살면서 두 손주들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 아들 같은 사위는 현재 인천에 있는 방위사령부에서 근무하는데, 주말마다 내려오지요.”

올해로 그는 아내와 결혼한 지 50주년을 맞았다. 어려운 시절 함께 해주며 반백년을 함께 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란다. 아내는 10년 전 난소암 3기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등 투병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고 한다.

“처음 병에 걸렸을 때 저는 ‘살아만 다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안팎의 살림을 제가 맡아서 해오고, 아내는 건강회복에 전념토록 하고 있답니다.”

그는 연무대에서 근무할 당시 가깝게 지내던 목사와의 친분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경사로운교회’의 장로로 봉직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 신앙은 평생 용기와 위안을 얻는 의지처가 되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저는 2014년에 장로 임직을 맡았습니다. 흔히들 장로가 되었다고 하면 ‘교회에서 성공한 한 직위 얻었다’ 생각하는데, 저는 ‘더 낮은 자세로 섬기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저의 모든 사심을 없애주시고 주님과 동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답니다.”

그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대면예배가 힘들어진 요즘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목사와 두어 명이 드리는 새벽기도에 참석한다.”고 밝힌다.

2001년 56세의 나이로 전역을 했다. 사회 복귀를 한 후 군에서의 경험을 살려 대전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했다. 지금도 외근 사무장으로 일을 봐주고 있다.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학교 주변의 폭력을 예방하고 안전을 지키는 논산경찰서 아동안전지킴이를 5년 동안 해왔다. 그가 살고 있는 주공아파트 노인회 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만보씩 걷고 있다. 등산도 10년 동안 해왔고, 테니스도 10년 동안 쳤었다고 말한다. 요즘도 우편집중국에서 택배 물류를 분류하는 고된 일을 매일 하고 있다. “힘들지 않으신지?” 질문에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답이 돌아온다.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는, 건강하고 밝은 모습은 코로나도 금세 몰아낼 에너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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