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인생박물관] 김낙기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 노인대학장남자식보다 내자식 교육 우선, 집안과 자기관리 우선
[계룡인생박물관] 김낙기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 노인대학장 남자식보다 내자식 교육 우선, 집안과 자기관리 우선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의 노인대학장을 맡고 있는 김낙기(金洛起, 87세) 회장을 만나기 위해 동아아파트 노인정을 찾았다. 그는 이 아파트의 노인회장이기도 하다. 그와의 인터뷰 내내 몸에 밴 친절함, 예의바름, 기품 있는 행동이 느껴졌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도 그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니, 이 시대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교육관도 살펴본다.
늦었지만 교사의 길로
선생의 고향은 논산시 채운면 화정리이다. 1934년, 꽤 큰 규모의 농사를 짓는 집안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민하단 소리를 들었다. 마을 서당을 다녔다. 그때는 일제강점기였는데, 그의 부모가 학교에 안 보내고 서당 교육을 시킨 것은 일제의 교육을 안 받게 함으로써 일종의 저항을 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그는 해방 무렵 10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입학하였다. 2~3살 나이 어린 아이들과 학교를 다녀야 했다. 동급생보다 늦은 나이인 24살이 되어서야 공주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초임 발령받은 학교는 홍성고등학교였다. 그는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수학과 물리를 가르쳤다. 그의 41년 교직생활은 홍성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등교사인 아내 만나 교장 퇴임까지
그는 교사생활을 한 지 1년 6개월 후 군에 입대했다. 마산군의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위생병으로 근무하였다. 그때 고모가 중매를 섰는데, 상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녀의 이름은 김진호(金鎭浩)이고 3살 적은 처자였다. “교사가 되려면 공부도 꽤 해야 하고 신원도 확실해야 하고, 무엇보다 몸과 정신도 건강해야 할 터이니 볼 것도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맞선을 보았는데, 마음에 꼭 들더군요.” 군에 있을 때 약혼하고 제대 후에 결혼하였다. 군에서는 교사 혜택을 받아 1년 만에 제대를 하고 당진군 면천고등학교 수학교사를 거쳐 공주농고 교사로 부임했다. 그곳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아내는 공주 계룡면 계룡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 후 논산, 대전(충남고, 충남여고) 등지로 부임 발령을 받았다. 강경상고 재직시에는 채운면 고향집에서 다녔다. 장항공고 교감할 때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연무대 기계공고에서 교장을 마지막으로 1999년에 퇴직하였는데 그때 훈장 동백장을 수훈하였다.
자녀교육 위해 조기퇴직한 아내와 그 결실
그는 아들만 넷을 두었다. 교사 맞벌이를 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아이들 교육은 남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둘째~넷째가 모두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자 “더 이상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상의 끝에, 아내가 교사생활을 접고 자녀교육을 직접 하겠다고 나서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도 가르쳤죠. 한 달에 한 번씩 선생님께 회비를 내는데 선생님께서 그 돈을 돌려주시는 겁니다. ‘피아노를 배우러 오지 않았다’면서요.... 아차!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서 아내가 큰 결단을 내린 거지요.” 같은 교사로서 그 생활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그로서는 아내의 그런 큰 결단을 자식에 대한 희생으로 알아왔다. “덕분에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어서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고 그는 표한다. 그 후 아이들은 모두 큰 속 썩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주었다. 큰아들 내외는 서울에서 부부 수학교사로, 셋째 아들은 대전에서 국어교사로, 막내는 대전에서 학원 운영하는 원장으로 세 아들이 교육자가 되었다. 둘째는 서울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환경 관련 사업의 CEO로 있다. 맏손녀는 사법고시 패스해 대형로펌의 변호사로 있다. 두 부부의 희생적인 자녀교육이 모두 결실을 거두었으니 자식농사 하나는 잘 지었다 할 수 있겠다.
‘부모교육’과 ‘평생자기훈련’에 솔선수범
그가 40년 이상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점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그래서 그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디 가서도 신임받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서로 못 믿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계층 간에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을 보면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도우면서 믿어주는 사회가 되어야지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 앞서 가정교육부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 겁니다. 부모가 곧 선생이지요. 그러니 부모는 부모로서 전문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자식을 잘 키우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부모교육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낳기만 하고 교육은 어린이집, 학원, 학교에 교육을 맡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단다.
김낙기 회장은 은퇴 후 계룡시에 거주하기로 결정한 다음, 이곳에 거주하는 은퇴 교사들의 모임인 삼락회(三樂會)를 만들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사무국장을 맡아오며 이 모임을 이끌어왔다. 삼락이란 가르치는 즐거움, 배우는 즐거움, 그리고 봉사하는 즐거움을 말한다. 또한 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으며, 현재 노인회 계룡시지회의 노인대학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동아아파트 노인회장을 7년째 맡아오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축구선수로 전국대회에도 나갔으며, 아직까지 눈도 밝고 귀도 밝아서 보청기, 안경을 끼지 않는단다. 뿐만 아니라 혈압, 당뇨, 관절 어느 곳도 아픈 곳 없이 아직까지는 건재하여 병원에 갈 일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지식이나 마음에서뿐 아니라 건전한 신체에서도 스승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논산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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