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논산의 양신(兩信) 양날개를 펴다

- “김홍신작가 북콘서트”와 “박범신문학제”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3/10/25 [22:56]

[문화산책] 논산의 양신(兩信) 양날개를 펴다

- “김홍신작가 북콘서트”와 “박범신문학제”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3/10/25 [22:56]

<문학산책논산의 양신(兩信) 양날개를 펴다

 “김홍신작가 북콘서트박범신문학제

 

 

강경젓갈축제가 끝났다. 나흘 동안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이번 축제에서 특기할 것은 문학행사가 연달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작가 김홍신 · 박범신 두 작가가 모두 논산 출신이어서다. 

21일 오후 5시 축제장 본무대에서는 <김홍신 작가 북콘서트>가 열렸다. 22일 오후 3시에는 소금문학관에서 박범신문학제가 펼쳐졌다. 두 작가는 고향뿐 아니라 나이도 같다. 3년 전 강경 야행 때도 두 작가의 북토크가 한 자리에서 열렸는데, 이번에는 개최장소가 달랐다. 이번 두 작가의 토크쇼 공통소재는 논산 · 강경 그리고 젓갈이었다. 우연히도 두 작가의 공통 화두는, 갈등과 화해였다.

 

[김홍신작가 북콘서트]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지요

 

 

김홍신 북콘서트는 축제장 본무대 열린 광장에서 펼쳐졌다. 1500 객석이 얼마나 채워질지 우려됐으나 콘서트는 야외객석 대부분이 꽉 찬 채로 출발하였다. 강다은이 이끄는 젊은 국악인 <가온병창단>은 흥겨운 우리 가락 연창, 그리고 관중과의 떼창으로 축제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북토크 진행자는 특유의 앗싸라비야~” 소리와 함께 깜짝 등장하였다. 서혜정 국민성우는, 강경젓갈과 상월고구마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내려가는 백성현 시장을 붙잡았다. 김홍신 작가와 백성현 시장이 함께 자리에 앉아 선후배로서 인간적인 정담을 나누게 한 연후, 본격적 토크쇼를 진행하였다.

 

[고향배경소설]

얼마 전 138번째 신작을 발표한 김 작가는 본인소설 상당수가 논산을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고 소회를 밝혔다.인간시장』『난장판』『대곡』『기찻길옆 오막살이등이다. 

지난 12일 김홍신 문학관에서는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때도 문학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이번 북콘서트에서 김 작가는 신간의 주인공 한서진 소위도 논산출신이라고 소개하였다. 

진행자는 논산시장에게 논산시를 군사도시 못지않게 문화도시로 발전시켜 주십사고 멘트하였다. 김 작가는 충청도, 그 중에서도 기호유학의 본산인 논산을 양반(兩班)의 도시라고 규정하였다. 문반과 무반을 합친 양반이 논산의 양대 산맥임을 전제하면서, 논산의 문화적 소양, 선비 정신을 잘 살려나가자고 제언하였다.

 

[젓갈축제와 『난장판』]

이번 강경젓갈축제의 주제는 강경젓갈이 상월고구마와 춤을 추다이다. 지금은 지역 행사가 축제’, ‘페스티벌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난장이었다고 한다. 지역이나 동네 잔치의 정점은 황소를 내건 씨름 대회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쓰인 난장판은 좋은 의미에서 쓰인 단어였다고 지적하면서 축제장 분위기를 북돋았다. 

진행자와 함께 나누는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젓갈과 엄마표 젓갈김장, 구황식품이라기에는 너무나 맛 있었던 생고구마와 군고구마 냄새 등등의 먹거리 추억담은, 마침 KBS전국노래자랑을 마치고서 참석한 관람객들의 입맛을 한껏 돋웠다. 지역농산물 축제에서 우리 지역 특산물이 최고라는 단순 홍보를 넘어, 감칠맛나는 스토리들을 얹을 때 고품격 문화상품으로 격상함을 실감나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김대건 신부와 대발해]

축제 본무대 옆 금강변으로는 라파엘호가 정박해 있다. 김대건 신부가 강경으로 들어올 때 타고 온 배 이름으로 영화 탄생촬영을 위해 제작한 배이다. 김 작가는 근래 교황성하를 알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년 11월에는 청년 김대건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탄생제작팀과 함께, 9월에는 베드로 성전 입구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 축성을 기념하는 특별미사에 초대받은 이야기다. 

작년에 한국인을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민족이라고 칭찬한 교황은 올해에는 한국인들은 모두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한국 가톨릭이 자생적이라는 점과 다른 나라에 비하여 순교자가 무수하다는 점에서 세계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K-가톨릭 열풍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최대 역작으로 김홍신의 대발해를 꼽았다. 72억의 사재를 들여 생존작가문학관으로서는 세계 최고의 문학관을 건축한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을 소개하면서, 4년 전 건양대학교 옆에 세워진 김홍신문학관 방문을 권하였다. 특히 2층 발해관에 들러서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느꼈으면 한다는 바람도 피력하였다. 

강경의 영화가 다소 쇠한 것 같은데, 강경의 비전을 어떻게 보시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김 작가는 낙관적이었다. “평소 다소 한산할지 몰라도 젓갈축제 때마다 인산인해인 것을 보면 부가 있다. 경제문화뿐 아니라 기호유학문화의 본산지, 조선 3대 시장으로서의 근대교육 등 근대화를 이끈 선구자로서 역사와 전통을 잘 잇고 이를 현대에 맞도록 승화 발전시켜 나간다면 논산 강경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난장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의연하게, 일상의 민중 언어수준에 맞춰 두런두런 대화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은, 현대판 원효 같아요. 젓갈축제장 같은 시장바닥에서 오락 위주의 행사를 넘어 인문학적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선발대 같습니다.” 인근 학교 이사장이 객석 끝에서 경청한 후, 기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란다. 

신구 이념갈등이 첨예한 시대에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들고 나온 김 작가의 신간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는 토크쇼 중간중간 돌발퀴즈로 해서 전달이 되었다. 1시간에 걸친 토크쇼 후 사인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북콘서트는, 유튜브국민작가 김홍신 문학관채널을 통하여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9회 박범신문학제]

나를 키운 7할은 젓갈

 

 

박범신 문학제는 올해로 9회째이다. 강경젓갈축제 마지막 날인 22일 오후 3시부터 열렸다. 올해 77세인 박범신 작가 등단 오십주년 기념식 겸하는 자리여서 축하케익 커팅식으로 출발했다. 

옥녀봉 아래에 자리한 소금문학관 아담한 공간에 소사모(소금문학관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서 3시간여 문학의 향기에 심취한, 박범신 문학의 향연이었다. 

[시노래] 이번 문학제는 시노래, 극공연 등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였다. 시노래는 박 작가의 작품을 노래로 승화시킨 곡들이다. 정진채 가수는 3곡을 불렀다. 부엔까미노는 원 제목이 길 위에서 죽은 W씨에게인데, 박작가 시집 궁시렁궁시렁 일흔에 수록되어 있다. “주름은 소설 주름표지에 써는 문구, 봄의 예감은 시집 산이 움직이고 길이 머문다에 수록된 시다. 

논산 연무 출신으로 뮤지션으로도 활동 중인 김산 시인은 흰 소가 끄는 수레마지막 부분을 작곡하여 선보였고, 마지막에 아버지~” 하면서 읇조렸다. 

강정 시인이 낭독한 대목도 박 작가 절필 당시 상황을 묘사한 흰 소가 끄는 수레였다. 자유혼을 물씬 발산하는 강정시인은 중 2때 헌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풀잎처럼 눕다를 보면서 문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그래서 자기 인생을 망친 여러 장본인 중 하나가 박범신 작가님이라고 투정을 부려서 좌중을 빵 터지게 하였다. 

작가의 작품을 극화한 공연은 분장이 이채로웠다. 상반신 전체를 흰색으로 페인팅한 아버지가 하얀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극단 상상두목 이정진, 임지성이 아버지와 아들간의 속 깊은 대화를 들려주었다. 박범신 작가는 긴꼬리나비를 과학자 못지않은 관찰력과 필치로 정교하게 그려냈는데, 인간군상을 빗대어 묘사해내기 위하여 얼마나 절치부심하고 공부했는지 실감시켜 주는, 살 떨리는 30분이었다.

 

[젓갈이야기]

작가와의 대담은 3인의 정담(鼎談)으로 이어졌다. 건양대학교 박범신문화콘텐츠연구소는 작가 이름을 내건 전국 최초의 연구소인데, 거기 박아르마 연구소장이 진행을 맡았다. 동석한 작가는, 박작가의 제자로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정민식 작가였다. 

나를 키운 것은 7할이 젓갈이다는 발언에 대하여 박범신 문학 세계와 젓갈과의 관련성을 묻자, 박작가는 강경젓갈의 역사를 복원해냈다. “내가 어릴 때는 젓갈을 다 못 먹었어요. 제가 연무대 살았는데, 강경장날 어머니는 함지박을 이고 황세기하고 조기를 사오셨죠. 그때 강경은 개도 조기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주로 황석어를 많이 사오셨는데, 황석어를 골라 좀 잘 생긴 놈은 담장에 쭉 말리셔요. 그걸 구워먹고 그랬죠. 좀 못생긴 것들은 토막 내가지고 젓갈을 담아! 조기도 이제 젓갈을 담아요. 조기를 항아리에 쟁이고, 그 다음에 소금을 쟁이고, 또 조기를 쟁이고 해서요. 당시는 냉장고가 없으니까 마루 밑 으슥한 곳에 놔두죠. 그러면 그게 한겨울까지 간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강경은 젓갈의 종주국은 아니었어요. 아마 70년대 이후에 강경의 젓갈집이 늘어난 것 같아요. 옛날에 군산 하구뚝이 생기기 전에는 싱싱한 생선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꼭 젓갈을 팔아야 될 이유가 없었죠, 생선들 팔아서 충분히 돈이 남았으니까. 금강하구언이 생기면서 생선배가 안 들어오니까 그때부터는 젓갈이 오히려 많아졌어요. 대둔산 토굴 속에 젓갈을 만들었고요.”
“17세기 18세기부터 강경은 우리나라 최대의 하구 도시였어요. 그때 중국에서 암염, 육지에서 나온 소금이 대거 여기에 들어와서 산처럼 염천동에 쌓이고, 그것들이 기호지방과 호남지방으로 분배되는 역할을 강경히 해냈죠. 그것이 이제 생선과 합쳐져서 젓갈이 된 거고요. 제가 쓴 소금이라는 소설에 보면 강경젓갈 예찬이 많이 나옵니다. 강경젓갈에 대해 오마주(hommage)하는 나의 마음은 소금에 잘 그려져 있다고 봅니다.”

 

 

 

 

[50년의 회한과 자부심]

정민식 작가는 박범신 작가를 온화한 교수로 기억한다고 하자 박 작가는 수시로 뇌성 벽력이 내 영혼 속에 늘 지나가고 있어서 온화할 수가 없죠. 이제 나이 들어 오욕칠정의 뇌성병력이 조금 사라지니까 인자함 같은 걸 스스로 느끼면서 내가 이렇게 사람이 되는구나하고 느껴요.”라며 껄껄 웃었다. 

이날 박 작가는 군인머리에 넥타이 차림으로 입장하였다. 평소 복장과 다르다는 얘기다. 명지대 시절, 학생들을 때린 적 있을 정도로 뜨겁게 가르치던 시절을 술회하였다. 상명대학교에서는 문예창작학과 만들어주면 석좌교수 하겠다하였고, 가난한 작가들이 대학원을 학비 걱정 없이 다니도록 신경 써준 일화도 들려주었다. “문학은 텍스트가 없다면서, “인생 자체가 우리들의 텍스트일 뿐이기에 문학을, 예술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건 할 짓이 아니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그는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는 기치를 여전히 내걸고 있다. 더러운 책상에서는 고교시절 강경 채산동에 있던 본인 집의 함석문, 자기방을 자의식의 골방이라고 규정하였다. 학교 안 가고 강경 고수부지 갈대밭에 누워 하루에 두어 권씩 소설책 읽던 날들을 추억하면서, 박범신이 작가로 성장할 수 있던 모든 자양분이 거기 있었다고 학창시절을 소환하였다.

한편, 젊은 시절 잡지사나 출판사 편집장을 찾아가 본인의 작품 게재를 요청할 때마다 자존심이 꽤 상했지만, “내가 쓴 이 문장들을 어떻게 독자들한테 들려줄까그 일념이 너무 절실해 쪽팔림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다고 목청을 높인다. 한때 별명이 <좌변덕 우질투>였던 작가가 근래 소설을 안 쓰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 라이벌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작가라면 내가 지난번 쓴 것보다 나은 것이 있을 때 효용성이 있는 거라 생각해요. 내가 지난 번의 나를 넘을 자신이 생길 때, 그때 다시 쓸 겁니다.” 

독자와의 대화 시간에 작가는 예술 작품은 내적 분열을 통해서 생산하는 거라고 단언하면서 사회 생활은 무난하게 하되, 혼자 있을 때는 오직 자신만의 시각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노작가는 <가슴 속 무덤>을 거론했다. 지금껏 살아보니까, 갈등과 헤어짐은 대부분 작은 오해 내지는 차이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결론적으로 을 많이 사랑해야 한다면서, 투병 중인 부인 소개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 이진영 편집위원

 

 

 

 

 

 
  • 도배방지 이미지

PHOTO News
메인사진
[표지초대석] 딸기와 함께 자란 아이들
메인사진
[와이어아트 전시회] 이현 작가의 철선(鐵線)이야기
메인사진
[놀뫼 어린이 동화마을] 정재근 원장의 『풍덩말에서 온 작은 영웅, 을문이』 3
메인사진
[기획특집]오페라마 <인생사용설명서>가 던진 화두, "논산의 유산, 세계로 확장되다"
메인사진
[소통공간] 유권자의 시간, 그리고 책임의 무게
메인사진
[특별대담] 돈암서원 김선의 원장 "오페라마 <인생사용설명서>, 예학의 정신을 오늘의 삶으로 확장하는 문화적 선언"
메인사진
[여행을 찍다] 수로와 선로 사이, 태국이 건네는 ‘뜨거운 생명력’
메인사진
[문화가 산책] 세계적인 예술인의 집결지, 논산 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