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진의 유람일지(儒覽日誌)] 시시각각 時視各各

김주호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5/02/25 [13:48]

[한유진의 유람일지(儒覽日誌)] 시시각각 時視各各

김주호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5/02/25 [13:48]

[한유진의 儒覽日誌]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른다: 조선시대와 오늘을 잇는 ‘2025 시시각각(時視各各)’ 전시

 

시시각각 時視各各 - 시간을 느끼고, 바라보고, 기록하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  

 

시간이라는 말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까? 일상에서 우리는 흔히 ‘순공(純功)시간’을 재며 효율을 높이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든 시간의 본질적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원장 정재근, 이하 한유진)은 이처럼 소중한 ‘시간’을 새롭게 살펴보는 2025 기획전시 〈시시각각 時視各各 – 시간을 느끼고, 바라보고, 기록하다〉를 마련했다. 이 전시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알리며, 기록했는지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시간’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제안한다.

현대인은 시간을 ‘관리’와 ‘효율’로 연결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시간은 자연과 삶의 철학이 어우러진 소중한 개념이었다. 이번 전시는 프롤로그부터 1·2·3부,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 조선시대와 오늘날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시간’이 지닌 깊은 의미를 조명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조선시대의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1743년, 사도세자가 아홉 살이 되어 관례와 혼례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을 때, 영조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라는 말을 남겼다. 이 기록은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으며, 왕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같은 감정을 품게 됨을 보여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시간을 정의하고 기록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통찰을 제시해 준다.

 

시간을 정의하다  

 

“시간은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조선시대에는 하루의 흐름을 정리하는 다양한 개념이 존재했다. 예컨대 해가 떠오르는 때를 기준으로 하루를 구분하며 시간의 흐름을 세분화한 ‘시(時)와 시진(時辰)’, 밤 시간을 다섯으로 나누어 야간 생활과 안전을 도모했던 ‘경(更)’,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정밀하게 구분해 농경과 일상 전반을 조율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절기(節氣)’ 등이 있었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단순히 관리의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삶이 긴밀히 연결된 방식으로 바라보고 정의했음을 보여준다. 시간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한 틀이었던 것이다.

1부 전시장 중앙에서는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 모형 영상을 상영하여 해의 그림자 길이 변화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조선시대 사람들이 시간을 측정한 방식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성력정수(星曆精髓)』 같은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하늘과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이 양력 중심의 효율적 시간 관리를 중시한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자연과 함께 받아들이며 일상의 지혜를 키웠다. 예컨대 절기를 통해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나 밤이 가장 긴 동지 무렵을 섬세하게 구분하고, 이에 맞춰 생활 리듬을 조정했다.

1부 전시장 동선은 앙부일구를 중심에 두어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 어느 쪽으로도 이동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으며, 전시장 곳곳에서 어둑한 조명 아래 순라군의 그림자를 마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 전시장 입구     ©

 

▲ 전시장 전경     ©

 

▲ 전시장 전경     ©

  

시간을 재고 알리다 

 

시간은 삶을 움직이는 기준이었으며, 정확한 시간 측정과 전달은 국가 운영과 일상 전반에 걸쳐 중요한 과제로 자리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시간을 알리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해가 뜨고 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한양에서는 종과 북, 포를 이용해 시간을 알렸고, 지방에서도 이를 반영한 시간 체계를 운용했다.

2부 전시에서는 명재 윤증 가문이 소장한 <해시계(日晷)>, <혼천의(渾天儀)> 등 시간을 측정했던 다양한 도구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시간을 어떻게 측정하고 전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서울(도성)의 시보 체계와 지방의 시보 체계를 비교한 전시 패널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한편 시간을 다룬다는 일은 깊은 철학적 고민을 수반한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깨달음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노력,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사랑하는 순간을 간직하고자 하는 열망 등은 인류가 오랫동안 공유해온 감정이다. 전시장에서 시간과 관련된 명언들을 만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을 기록하다  

 

시간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기록이라는 형태로 남았다. 조선시대에도 개인의 일상과 국가의 역사를 기록하며, 지나간 시간을 보존하고자 했다.

3부의 주요 공간인 ‘시간의 서고’는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소다. 조선 건국(1392, 임신년)부터 경술국치(국권피탈)(1910, 경술년)까지의 36개 사건을 카드 형식으로 제작해 벽면에 배치했으며, 관람객들은 원하는 사건 카드를 직접 뽑아보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민력(民曆), 연보(年譜), 일기 자료 등 개인과 국가가 남긴 다양한 기록물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전시의 마무리 공간에서는 관람객들이 스스로 자신의 시간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도록 ‘오늘 한유진에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짧은 질문에 답해보는 과정을 통해 전시에 머무른 시간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도록 구성했다. 

 

▲ 시간의 서고     ©

 

▲ 전시장 전경     ©

  

당신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나요?  

 

전시의 마지막 공간은 신성환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Zone-gong(空-存)’으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방을 형상화한 공간 속에 사계절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을 연출하며, 시간의 덧없음과 소중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해가 떠오르고 지고, 여름의 빛과 겨울의 칼바람이 스쳐 가는 순간을 방 안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결국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지만 어떻게 살아내는가는 각자의 몫임을 깨닫게 된다.

전시를 마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나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한유진의 시간  

 

이번 전시는 한유진 개원 이후 선보여 온 두 차례 전시와 연속성을 유지한다. 먼저 개원 기념 특별전시 〈다시, 유교〉에서는 서원·고택·구곡 등 유교문화 속 선비들의 ‘공간’에 집중했다. 다음 해 개원 1주년 기획전시인 〈당신은 어떻게 보여지길 원하는가?〉에서는 도전과 창조, 용기와 소통의 가치를 지켜온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개원 3년 차를 맞은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도 시간은 중요했을 것”이라는 물음에 주목했다. 더불어 2022년 10월 1일 개원 이후 한유진이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의미도 담았다. 한유진이 쌓아온 성과와 노력은 앞으로의 행보에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전시에서는 한유진에 기증·기탁된 유물을 활용해 기획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층에 마련된 별도의 기증·기탁 전시실에서는 명재 윤증 가문의 기증·기탁전을 선보이고 있어, 한유진이 지향하는 유교문화 확장과 소통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번 기획전시는 11월까지 한국유교문화진흥원 1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관람 시간과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 등 자세한 사항은 한국유교문화진흥원 누리집(홉페이지, www.ikc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2024 충청국학진흥지원사업’의 일환인 〈전통문화 융복합 콘텐츠(전시) 개발·보급〉 국비 사업 지원을 받아 기획되었다. 앞으로도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양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시간은 흐르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가 시간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김주호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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