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논산시 농업발전기금, 누구를 위한 기금인가?”2년 연속 반복된 침수 피해…농민의 눈물, 외면하는 행정
침수 원인은 ‘자연재해’ 아닌 ‘인재(人災)’
2023년 7월 14일 새벽, 논산 부적면 아호배수장에서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농어촌공사 논산지사(이하 농어촌공사)는 “배전함이 낮게 설치돼 침수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배수펌프의 차단기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8개 중 4개의 펌프 가동이 중단됐고, 역류한 물은 순식간에 인근 부적뜰 일대를 덮쳐 농경지와 비닐하우스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당시 농민들은 기후의 탓으로만 돌리며 하늘을 원망했지만, 나중에서야 ‘인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24년 7월 10일, 또 12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반복되었다. 똑같은 이유로 또다시 펌프 가동이 중단되었고, 부적면 일대는 또다시 침수됐다. 이번에도 피해는 막심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예고된 재난’이었다는 점이다.
56억 복구 예산 있었지만… 농어촌공사의 무책임
2023년 침수피해 이후, 피해 농가의 요구에 따라 정부와 논산시에서는 56억 원 규모의 재해복구사업비를 책정했다. 그러나 농어촌공사는 그 예산을 신속하게 집행하지 않았다. 안일하게 시간만 허비하다가 배전함 개선공사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됐다. 결국 2024년 같은 재난이 되풀이되면서 행정의 무책임이 낳은 참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는 곧바로 반증되었다. 2024년 9월 21일, 207㎜의 더 많은 폭우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8개 펌프를 전부 가동했을 때는 인근 농경지가 발목 정도만 잠길 정도의 경미한 피해에 그쳤다. 즉, 펌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더라면 침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책임 없다”는 농어촌공사, 외면받는 농민
2024년 7월, 두 번째 침수 피해 직후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폭우피해대책위원회(대표 배형택)’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7월 15일 농어촌공사와 간담회를 열고, 공식적인 책임과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농어촌공사 지사장은 "펌프를 모두 가동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후 민관공동조사단(단장: 논산시 건설국장)이 구성하여 피해 원인 분석과 피해 현황 규모를 조사해 농어촌공사의 책임이 규명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이후 실무회의 딱 한 번만 하고 민관공동조사단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농민 보호’ 의지, 현실은 벽
2024년 12월 13일, 백성현 논산시장은 침수 피해 농가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피해대책위원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피해 원인 분석 및 피해 규모 조사를 위한 소요 예산을 논산시에서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백 시장은 "농업인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며, "논산시 농업발전기금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가능한 행정적 지원 방안을 실무 부서에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백 시장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무 부서에서는 '지원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시정 내부의 소통 부재와 행정체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25년 2월 3일, 폭우피해대책위는 논산시의회 조용훈 의장을 찾아 피해 조사 비용의 시 예산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조 의장은 "농업은 논산의 생명산업이며, 농민은 논산의 뿌리다. 침수 피해로 2년 연속 고통을 받는 농가에 시의회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농업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행정의 역할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조 의장은 “논산시 농촌발전기금설치 및 운용 조례 제5조 제6항에는 ‘농업재해를 입은 농업인에게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니, 농업발전기금의 활용 가능성을 적극 검토해 줄 것"을 해당 부서에 요청했다. 조례상 근거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실무 부서는 “기금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 결과, 피해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기형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3개 농가, 10억여 원 피해… 그런데 조사는커녕 사과도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농가는 13곳. 작게는 5천만 원, 많게는 5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으며, 총 피해액은 10억 원을 상회한다. 이들의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검증하기 위한 비용은 약 5천만 원에서 1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해당 비용조차 마련할 수 없어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행정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다. 농민들의 절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논산시와 농어촌공사는 ‘책임 회피’, ‘절차 논의’,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피해 농가에 대한 사과는 물론, 어떠한 실질적 보상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농업발전기금, 누구를 위한 것인가?
‘논산시 농업발전기금’은 본래 농업인들의 재해 복구, 경영 지원, 기반 조성을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지금 이 기금은 위기에 빠진 농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백성현 시장과 시의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일이 아니라, "농업인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다. 농민은 논산의 경제와 생태계를 지탱하는 근간이며, 이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행정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어야 한다. 마지막을 맺으며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2년 연속 반복된 침수 피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행정 실패와 시스템 부재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였다. 농민들의 절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논산시는 더 이상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은 숫자와 통계가 아닌 사람의 생존이 달린 현장이다. 자연은 통제할 수 없지만, 피해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를 복구하는 손길 역시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땅을 일구는 손이 무너졌을 때, 그 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또한 사회의 책임이다. 이제는 의심과 변명의 물음표가 아니라, 책임과 실천의 느낌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논산시, 농어촌공사, 그리고 정치권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침수 피해 농민들의 아픔 앞에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 전영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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