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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가 함께 머무는 공간 ‘죽림서원’
강경사제동행길은 죽림서원으로부터 시작한다.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선생은 말년에 강경으로 낙향하여 동료 후학들과 함께 공부하고 강학을 이어갔다. 그는 스승 율곡을 모시고 제향하는 서원 건립을 논의하여, 1626년(인조 4)에 이르러 황산이 올려다보이는 위치에 황산사(현재 죽림서원)를 건립하고,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모셨다. 1665년(현종 6)에 임금으로부터 ‘죽림’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6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림서원의 정문인 외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는 강학 공간인 ‘헌장당’이 있고, 내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죽림서원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인 ‘죽림사’가 있다. 죽림사는 우리나라 명현 18현 중 6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스승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모시고 싶었던 김장생 선생의 바람을 이뤄주기라도 하듯 율곡 이이, 우계 성혼과 사계 김장생 선생의 신위가 함께 모셔졌고, 이후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이 추가로 모셔졌다.
존경을 담아 지은 쌍둥이 정자 ‘임리정과 팔괘정’
죽림서원의 오른편에는 사계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며 머물던 임리정이 있다. 원래는 황산의 지명을 따서 황산정이라고 하였으나 『시경(詩經)』의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문장의 글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여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뜻으로 즉 항상 자기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해 몸가짐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김장생은 자신의 거처 근처에 스승의 신위를 모신 죽림서원을 바라보며 김장생 본인도 누군가의 스승으로서 본이 되기 위해 마음을 수양하고 배움을 늦추지 않았다. 임리정에서 도보로 5분 남짓 떨어진 장소에 스승을 존경하는 김장생의 모습을 보며 배웠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스승과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마음과 존경과 동경의 마음을 담아 임리정과 꼭 닮은 팔괘정을 건립하였다. 송시열도 그의 스승인 김장생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스승의 날 발원교 ‘강경고등학교’
송시열이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팔괘정을 지은 조선시대 이후 40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곳 논산 강경고등학교(당시 강경여자중고등학교)에서 스승의 날이 시작되었다. 1958년 논산 강경고등학교 적십자청소년회 학생들은 퇴직한 선생님을 위문하기 시작했다. 매년 꾸준히 전개하던 이 활동이 점차 소문이 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1964년 ‘스승의 날’로 발전하였다. 강경고등학교의 운동장 옆에는 거대한 기념탑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스승의 날 기념탑이다. 2000년 청소년 적십자단원들이 최초로 스승을 위문했던 당시 강경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또, 강경여자중학교의 운동장 옆에는 스승의 날의 역사와 이야기가 남아있는 스승기념관이 있다. 그 시절, 지금 스승의 날의 태동이 된 학생들이 죽림서원과 임리정, 팔괘정에 깃든 스승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를 알았는지, 아니면 그들이 행동에 유교의 인성교육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공간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거쳐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과 이를 실천하는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존사애제(尊師愛弟)의 정신이 깃든 강경고등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영성 교장과 만나 스승의 날의 의미와 교육 현장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영성 교장은 “1958년부터 강경여자고등학교(현 강경고등학교) 적십자청소년회 학생들이 병상에 계신 선생님을 찾아 위로하고, 퇴직한 은사님을 찾아 뵙는 등 스승 존경 운동을 펼쳐온 것이 스승의 날 제정의 시초가 되었다”며 스승의 날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당시 적십자청소년회 단장을 맡았던 노창실(8회 졸업생) 선배께서 이 운동을 처음 제안하셨는데, 지금은 건강이 많이 좋지 않으신 상황”이라며 “그분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장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충효예 선비의 길’과 ‘스승의 날 사제동행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하며 “스승의 날을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진정한 존사애제의 의미를 되새기고, 학생들이 스승을 존경하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배워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영성 교장은 “향후 한국유교문화진흥원과 보다 긴밀히 협력해 학생들의 선비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강경고등학교가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근대의 시간을 느끼는 곳 ‘강경역사관’
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는 강경역사관이 있다. 1905년 자본금 50만 원으로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되었다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이용했고,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지붕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후 원형을 살려 다시 복구하였다.
선비정신 함양의 공간 ‘덕유정’
육예(六藝)는 선비정신을 갖추기 위한 필수 교양으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여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도덕적, 예술적, 신체적, 지적 소양을 두루 갖춘 선비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덕유정’은 강경의 명소 옥녀봉에서 1793년(정조 17) 시작되었는데, 1865년 현 위치로 이전되어 지금까지 그때의 모습으로 이어가고 있고, 논산시 향토유산 1호로 국궁의 보고, 국궁의 일번지로 불린다. 덕유정은 단순히 활을 쏘는 장소에 머물지 않았다. 지역사회의 중요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구심점이었고, 잊혀가는 전통 국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전통의 얼을 이어온 살아있는 현장이다, 옛 선인들은 이곳에서 활을 당기며 과녁에 많이 맞추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자세와 바른 마음으로 시위를 당기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쏜 후에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요즘 세태 속에서 덕유정은 자기 단련과 심신 수양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강경의 변화를 지켜본 ‘옥녀봉’
강경 옥녀봉은 해발 44M의 낮은 봉우리지만, 산봉우리가 단정히 앉아 있는 옥녀의 모습과 같다고 한데서 유래했다. 달 밝은 보름날 선녀들이 내려와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는 등 옥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오랜 시간 강경의 변화를 묵묵히 내려다본 고장의 명산이다. 옥녀봉의 원래 이름은 강경산으로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 속에 등장한다. 산 곳곳의 넓은 바위마다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이 명문을 남긴 흔적이 있고,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서 근방의 사람은 물론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옥녀봉 근처에는 1896년 파울링 선교사 일행이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 성도인 지병석 씨 댁에서 첫 예배를 드린 구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가 있다.
구렁이가 된 청년이야기 ‘미내다리’
미내다리의 명칭은 강경천을 ‘미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에 따르면 1731년(영조 7) 강경촌에 살던 송만운이 주도하여 1년도 안 되어 완공했다. 파손되어 있던 ‘은진미교비’ 는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미내다리에는 구렁이가 된 청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는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만 했다. 그래서 다리를 놓기로 한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걷어 두 청년에게 다리 공사를 맡겼다고 한다. 두 청년이 다리를 놓고 보니 돈이 남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는 금액이 너무 적고, 두 사람이 나눠 갖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돈은 다리가 부서질 경우 보수할 때 사용하기로 하고 다리 근처에 묻어 놓았다. 몇 해가 지나도 다리는 부서지지 않았지만, 공사를 했던 두 청년 중 한 청년이 갑자기 병을 얻었다. 친구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다리 밑에 묻어둔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으러 갔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병이 든 청년이 이미 그 돈을 사용했던 것이다. 청년의 병이 점점 악화하더니 어느 날 저녁 큰 구렁이로 변해 미내다리 밑으로 들어가버렸다. 간혹 구렁이가 미내다리 근처로 나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다리 밑에 묻어둔 돈을 꺼내쓴 사실이 알려진 후로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림서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미내다리까지 이어지는 ‘강경사제동행길’은 스승을 향한 제자의 존경과 사랑, 선비정신을 함양하는 덕유정, 강경에서의 역사적 시간을 느껴보는 장소와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악인징계담이 있는 미내다리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곳곳에 있다. 수백 년간 강경 곳곳에 남겨진 이야기는 시대를 건너 서로 연결되며 현재에 숨 쉬고 있다. 우리가 함께 걸어볼 이 길이 후대에는 어떤 기록으로 남을까 궁금해진다. 한편 한유진에서는 ‘인의예지’의 선비가치를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동참하고 있는 선비회원과 일반 참가자를 대상으로 오는 6월 9일에 제3구간인 ‘을문이효길’ 걷기 행사를 진행한다. 선비회원 양성의 활성화와 ‘수기치인’의 삶 등 선비정신을 전 국민에게 홍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효’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하는 취지다. 참여를 원하는 선비회원과 일반 참가자는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교육부(041-981-9925)로 문의하면 된다.
- 전영주 편집장, 이병주 한유진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이 기획기사는 2025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시행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논산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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