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사계예길, 배려와 겸손 그리고 관계의 미학‘충효예 선비의 길 - 황산유람길을 찾아서’4
사라짐을 겪고 재탄생한 공간 ‘휴정서원’
휴정서원은 1699년(숙종 25) 유무를 주향으로 모시기 위해 창건되었다. 이후 유문원 등 네 분을 추배하였으나 철거와 수몰의 아픔을 겪게 된다. 대부분의 서원이 그러했듯 ‘휴정서원’ 역시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1919년 다시 복원되었지만 1944년 탑정저수지가 완성되면서 수몰 지역에 포함되며 휴정서원은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현 위치에 단소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1984년 사우를 다시 세우고, 1985년 김장생에게 예학의 가르침을 준 스승 구봉 송익필을 주향으로 8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금까지 봉향하고 있다. 휴정서원 외삼문 밖 담장에는 서원의 건립 배경과 구조 등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는 ‘휴정서원정사실비’가, 입구에는 유림들이 세워놓은 여러 공적비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휴정서원’에 제향된 8인 모두 사계 김장생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족친이거나, 사우 문인에 속하는데 이는 연산 지역이 김장생의 고향이었던 만큼 그의 막대한 영향력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장생을 중심으로 지역 유림의 흐름을 형성했고, 이는 ‘휴정서원’이라는 공간에 녹아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계 선생의 마지막 안식처 ‘김장생선생 묘소’
연산역 남쪽 고정산 골짜기에는 ‘김장생선생 묘소‘가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두른 묘역으로 들어서자, 여섯 기의 봉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계 김장생’을 비롯하여 광산김씨의 중흥을 이룬 7대 조모, 양천허씨와 아들 김철산 등 선조의 묘도 함께 있다. 이는 광산김씨 가문의 정신적 근간을 이룬 선조들의 역사가 집약된 공간이다. 그런데 일반 분묘에 비해 조금 커 보이는 맨 위쪽에 있는 봉분이 바로 김장생선생 묘소이다. 보통 자손은 조상의 묘 아래에 묘를 쓰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그런데 예학의 종장이라 불리는 김장생의 묘가 역장(逆葬)이라는 사실에 의아함이 든다. 설명을 들어보니 기호지방에는 역장이라는 말 자체가 없고, 조선조에는 요즘과 달리 유명한 집안에서 조상의 묘 윗자리에 자손의 묘를 쓰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계 김장생은 예학에 큰 자취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기호학파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학문과 교육에 시간을 보내며 조선 후기 대표 유학자인 송시열과 송준길 등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김장생의 아들 김집은 사계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아 기호학파를 형성하고 예학을 체계화했다. 김장생과 김집은 부자관계로 유일하게 부자가 나란히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어 동국 18현에 이름을 올렸다. 김장생 묘소는 단지 한 인물의 무덤을 넘어서서 조선의 사상과 가문, 당대의 전통문화가 어우리진 역사적 공간이다. 시대의 정신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듯 김장생의 예와 학문은 여전히 이곳에 깃들어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의 시간을 내어주고 있다.
명문가를 탄생시킨 이야기 ‘영모재・모선재・양천허씨 절부정려’
사계 김장생의 가계를 따라 걷는 길. 이 길에는 광산 김씨를 명문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다양한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김장생의 묘역에서 나와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넓은 마당을 지닌 기와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리가 잘 된 듯한 단정한 모습과 다른 고택에서는 보기 어려운 싸릿가지를 엮어 만든 싸리문이 인상적인 영모재다. 영모재는 지금의 광산 김씨를 있게 만든 인물로 받들어지는 양천 허씨부인의 재실이다. 허씨부인의 남편은 조선 전기의 문신 김문이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때 허씨부인의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된 딸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친정에서는 재가를 권했으나 이를 안 허씨부인은 몰래 개성 친가를 떠나 연산 고정리 시댁까지 200여 리 길을 걸어왔다고 전해진다. 연산에 내려온 그녀는 아들 김철산을 훌륭히 키워내는 데 여생을 바쳤다. 김철산의 아들이 성종대에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이며, 이후로도 광산 김씨 문중에서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양천 허씨부인은 김장생의 7대조 할머니가 된다. 역사에서 만약은 의미가 없지만, 만약 양천 허씨부인이 친정의 뜻에 따라 재가했다면 어쩌면 광산 김씨는 지금처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문가로서 자리 잡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455년(세조 1) 허씨부인이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1467년(세조 13) 나라에서는 그녀의 행적을 기리는 정려를 내리고 고정리 마을 입구에 정려각을 세워주었다.
고정리에는 영모재 말고도 광산 김씨 문중에 대한 유적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김장생의 할아버지인 김호와 아버지인 김계휘의 재실인 ‘모선재’이다. 논산 출신의 문신, 김호는 선공감주부와 지례현감을 지냈으며 역학과 성리학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김계휘는 1549년(명종 4)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에 등용되었고, 1557년(명종 12) 후학 양성을 위해 연산 천호산 고운사에 정회당을 세웠다.
조선시대 예학의 정수 ‘돈암서원’
황산유람길 4구간 “사계예길”의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돈암서원’이다. 2019년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때 충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포함된 서원이 바로 이 돈암서원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때도 보존된 유서 깊은 서원으로 고향에서 은둔하여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던 사계 김장생의 일생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돈암서원은 조선시대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사계 김장생을 비롯해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계 김장생이 살았던 16~17세기는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제는 성리학 이념만으로는 무너진 사회의 기강과 윤리의식을 바르게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수습 대안으로 ‘예학’을 받아들였다. 1602년(선조 35) 연산으로 낙향한 사계 김장생은 돈암서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양성당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후학을 가르쳤다. 1643년(인조 21) 김장생의 제자들과 지역 사림들이 그를 위한 사우 건립을 논의해 사우를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했다. 이후 1660년(현종 1) 현종이 ‘돈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다.
예를 실천하고, 조화를 이루다
휴정서원에서 시작해 돈암서원으로 이어지는 황산유람길 4구간 “사계예길”은 광산 김씨 가문의 가계를 살피는 걸음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돈암서원에 이르러서야 그 길이 우리나라 예학을 이끌어온 유학자들의 일대기를 살피는 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계 김장생의 후손 역시 예학의 길을 완성한 유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돈암서원의 사당인 숭례사 앞 꽃담에는 이 여정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전서체로 새겨진 ‘지부해함(地負海涵)’, ‘박문약례(博文約禮)’, ‘서일화풍(瑞日和風)’의 뜻을 풀어보면 ‘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들 듯이 포옹하라, 학문을 넓고 깊이 익혀서 예(禮)를 실천하라, 아침햇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품성을 길러라’라는 의미다. 사계 김장생이 살았던 16~17세기와 비교해볼 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소통의 부재나 단절, 팽배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오히려 그 시절보다 더 기강이 무너지고 윤리의식마저 사라진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계 김장생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바다가 물을 받아들이듯 포옹하고 배움으로 예를 실천하는 삶. 어쩌면 사회를 바꾸는 힘은 이러한 작은 예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예’는 먼 이상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걸음마다 스며 있는 소중한 가치이자,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다. 오늘날에는 위계보다 겸손과 배려를 통한 상호 존중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이 중시된다. 전통적 가치는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유진에서는 오는 9월 10일,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하고 있는 선비회원과 일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국유교문화축전’의 행사 중 일부로 ‘제3구간 을문이효길’, ‘제4구간 사계예길’, ‘제5구간 계백충길’의 3가지 코스를 서원 행사와 이야기가 있는 해설 등과 함께 한유진만의 차별성을 가진 걷기 행사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선비회원 양성 활성화와 ‘수기치인’의 삶 등 선비정신을 매개로 전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효’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하는 취지다. 참여를 원하는 선비회원과 일반 참가자는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교육부(041-981-9925)로 문의하면 된다.
- 전영주 편집장, 이병주 한유진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이 기획기사는 2025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시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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