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지역미디어지원사업] 계백충길,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충의 의미‘충효예 선비의 길 - 황산유람길을 찾아서’5
백제의 시작과 최후의 순간 ‘백제군사박물관’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 역사는 흐르고 흘러 백제의 존망을 결정지은 황산벌 전투가 있은 지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흘렀다. 한반도 국가 중 최초로 한강을 차지했던 백제는 660년 황산벌 전투를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게 되었다.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5만 명의 신라군과 장렬히 맞서 싸웠던 계백 장군도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황산유람길 5구간 “계백충길” 구간은 ‘백제군사박물관’에서 시작한다. 2005년 계백 장군의 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관했으며 백제의 군사문화와 호국정신을 주제로 3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터를 잡았을 때부터 시작해 백제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황산벌 전투를 재현한 미니어처 전시물이 나온다. 계백 장군과 5천 명의 결사대는 네 번의 전투에서 5만 명의 신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결국 신라의 어린 화랑 관창이 용맹을 떨쳤고, 백제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패배와 죽음을 맞이했지만, 황산벌 전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회자되는 인물은 계백 장군과 그가 보여준 충절이다.
백제군사박물관을 나와 두 번째 장소로 이동하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결전이 벌어졌을 황산벌이라고 추정되는 방향을 바라본다. 장렬한 충심으로 계백 장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전장에 나섰을 5천 군사들의 의기가 지금도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만 같다.
백제유민이 만든 계백장군의 묘 ‘계백장군유적전승지・충장사’
“계백충길” 두 번째 장소는 백제군사박물관과 너른 잔디밭을 사이에 두고 있는 ‘계백장군유적전승지’다. 계백 장군과 5천 명의 결사대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대부터 조성한 유적이며 말을 타고 칼을 뽑아 달리는 형상의 계백 장군 동상이 인상적이다.
잔디광장을 지나면 충장사로 이어지는 홍살문에 닿는다. ‘충장사’는 계백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곳에는 푸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계백 장군 묘가 조성되어 있다. 황산벌 전투가 끝난 후 계백 장군의 충성 어린 죽음을 본 백제 유민들이 그의 시신을 은밀하게 거두어 매장하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옛 문헌에서 계백의 목이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수락산(首落山)’과 시신을 급히 거두어 임시로 매장했다는 ‘가장곡(假葬谷)’도 바로 이 부근이다.
충장사의 출입구에서 사당에 이르는 길은 삼문삼도(三門三道)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궁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가운데 신도(神道)는 사당에 모신 신, 계백 장군의 혼령이 오가는 길로 일반인은 밟으면 안 된다. 삼문삼도는 들어갈 때는 오른쪽, 나올 때는 왼쪽을 이용해야 한다.
시대를 초월에 본이 되는 충의 ‘충곡서원’
1680년(숙종 6)에 계백의 위패를 주향으로 계백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으로 창건하였다. 이후 1692년(숙종 18)에 ‘충곡서원’이 세워지게 되었다. 충곡서원에는 계백과 사육신 등 총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충곡서원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허물어졌다가 1935년 다시 세워졌고, 이후 1977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1700년(숙종 26)에 연산의 유생 김득겸이 “연산 지역이 계백, 성삼문 등 충신들의 유풍과 공적이 남아 있는 곳이면서 사람들이 80~90년 전부터 지속해서 건립을 요청한 지 오래되었다”라고 상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연산 지역을 충절의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계백 장군이 죽고 천 년이 넘게 흐른 조선 중기, 이 지역에서는 그와 함께 사육신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백제에 대한 애정과 충의를 단순한 과거의 감정이 아닌, 왕조와 시대를 초월하는 고귀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호수에 설치된 가장 긴 다리 ‘탑정호 출렁다리’
‘탑정호 출렁다리’는 2018년 8월 30일 착공하여 2020년 10월 15일 준공된 다리이다. 논산시 휴양관광산업의 랜드마크로 야간에도 미디어파사드, 음악분수 등 특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놓이면서 탑정호는 논산의 관광명소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부적면과 가야곡면을 잇는 출렁다리는 600m의 길이를 자랑하는데, 호수 위에 설치된 가장 긴 출렁다리로 한국기록원에 인정받기도 했다.
탑정호를 따라 펼쳐진 황산유람길을 거닐며 유적마다 서린 이야기를 차곡차곡 마음에 담는다. 그렇게 쌓인 깊은 울림을 안은 채, 고요히 출렁다리 위에 발을 올려본다.
출렁다리라는 이름과 다르게 흔들거림이 심하지 않아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하다. 수면을 바라볼 수 있는 바닥 구조여서 발아래로 수면이 훤히 들여다보여, 아찔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탑정호 출렁다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각은 해가 지는 시간이다. 노을이 질 때 다리를 건너면 수면과 하늘이 모두 붉게 물든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맑은 날씨, 잔잔한 수면에 하늘과 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물을 건너거나 한편의 높은 곳에서 또 다른 한편의 높을 곳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하는 다리. 우리가 건너는 이 다리가 조금은 나아진 내일로 나아가는 길이 되길 바라본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충(忠)’
대둔산의 맑은 물줄기가 흘러와 머무는 탑정호는 여전히 잔잔하다. “계백충길” 속에는 여러 순간이 겹겹이 담겨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계백 장군의 마음도, 그러한 장군을 따르며 황산벌 전장에 나섰을 5천 결사대의 마음도, 그들을 오래도록 기리며 간직해온 이 지역 주민들의 마음도 모두 충(忠)에 닿아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충이 아니라 현재 나의 모든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충의 의미라는 것을 몸소 배우는 시간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진심을 다하는 ‘충’, 친구를 만나 배반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는 ‘충’, 직장에서 사회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충’, 국가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충’. 지금, 이 순간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그 진심이 곧 ‘충’이 되어줄 것이다.
거창한 무엇도 좋지만,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충실한 삶을 살아내는 것. 계백 장군 역시 무인으로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했기에, 그 시간과 선택들이 쌓여 충의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 또한 자신에게 성실한 삶을 이어간다면, 어느 순간 충의를 지닌 사람으로서 있을지도 모른다.
‘충’이라는 본질적 가치는 시대에 맞게 실천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잃지 않으려면, 그 원형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보존하며 실천해야 한다. 전통적 가치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그 본질을 지키며 다양한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는 오는 9월 10일,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하고 있는 선비회원과 일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국유교문화축전’의 행사 중 일부로 ‘제3구간 을문이효길’, ‘제4구간 사계예길’, ‘제5구간 계백충길’의 3가지 코스를 서원 행사와 이야기가 있는 해설 등과 함께 차별성을 가진 걷기 행사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논산을 대표하는 효자인 중화재 강응정의 이야기, 예학의 대가 김장생, 충신 계백장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황산유람길 3개 구간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수기치인’의 삶 등 선비정신을 매개로 전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선비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참여를 원하는 선비회원과 일반 참가자는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교육부(041-981-9925)로 문의하면 된다.
- 전영주 편집장, 이병주 한유진 연구교육부 책임연구원
이 기획기사는 2025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시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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