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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의 ‘숨은 대들보’
많은 문학인들은 김홍신문학관을 두고 “생존 작가의 문학관이 이렇게 장중하게 건립된 사례는 가히 세계적이다”고 감탄한다. 2017년 5월 기공식 이후, 2019년 6월 문을 연 김홍신문학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 김홍신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그 뒤에는 늘 묵묵히 그림자처럼 함께한 이가 있으니, 바로 여칠식 감사다. 홍상문화재단의 설립 과정부터 문학관 건립, 그리고 개관 이후의 운영까지, 좋은 일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맡아온 사람이 바로 그다. 지금도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에 불 끄는 일까지 대부분의 일과가 그의 몫이다. “처음엔 쉽지 않았습니다. 개관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로 개점 휴업 상태였으니까요. 하지만 시민강좌와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오며 이제는 지역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책벽·모루·로고, 세 가지 상징
김홍신문학관의 어느 공간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여 감사는 문학관을 상징하는 관전 포인트로 ‘책벽’, ‘모루’, ‘동그라미 로고’ 셋을 꼽는다. 먼저 문학관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1~2층이 뚫려 있는 ‘맘모스 책벽’이다. 이곳에는 김홍신 작가의 저서 140여 권을 비롯해 총 220여 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한국 최초 밀리언셀러인 『인간시장』 원본은 물론, 축약본과 『김홍신의 대발해』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학관 중앙에는 대장간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릴 때 쓰이는 묵직한 받침쇠 ‘모루’가 자리하고 있다. 김홍신 작가가 국회의원 시절, 홍문택 신부가 “세상을 떠받치는 버팀목 같은 존재”라며 그의 호로 지어준 상징물이다. 마지막으로 흑색과 적색의 동그라미 로고는 ‘피 한 방울’과 ‘잉크 한 방울’을 의미한다. 김홍신 작가는 “소설가는 남의 잉크병이 아닌 자기 피를 찍어 목소리를 남기는 존재”라고 갈파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지척에서 듣고 지켜온 이가 여칠식 감사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여칠식 감사가 삶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가르침은 ‘좋은 끝맺음’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언급하며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끝이 좋으면 결국 다 좋은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좋은 끝을 위해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며, 특히 청년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은 수많은 실패에서 길어 올린 경험의 소산이지요.” 그는 핀란드에서 매년 10월 13일 열리는 ‘실패의 날’ 행사를 예로 들며, 실패 경험을 나누고 재도전의 용기를 북돋는 문화가 결국 사회를 강하게 만든다고 강변한다.
“이타적인 삶에서 얻은 깨달음”
여 감사의 철학은 그의 이력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는 『논산신문』 발행인으로, 또 재경향우회 사무국장으로, 지역을 위한 여러 공직과 사회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이타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의 입에서는 늘 “당연한 일은 줄이고, 감사한 일이 많아져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는 남은 인생의 마지막 십리를 향해 오늘도 걸음을 이어간다. “배 속에는 밥이 적고, 입속에는 말이 적고, 마음 속에는 근심이 적고, 밤에는 잠이 적도록. 네 가지 적음을 지키며 살아가려 합니다.” 최근 김홍신문학관 집필관 한복판에 징이 들어섰다. 최애화 오벨리스크 바이스타 회장이 기증한 이 징은 직경 163cm로 국대 최대이다. 이 징의 운반과 세팅 역시 하나의 대역사였는데, 안정하게 설치한 사람 덕에 문학관 태징은 여운으로 화답한다. 김홍신문학관이라는 문화 공간이 김홍신 작가의 작품과 철학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여칠식 감사의 묵묵한 헌신과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백릿길의 마지막 십리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묵묵하고 듬직하다.
전영주 편집장 <저작권자 ⓒ 논산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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