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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말이 있다.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서 혼이 되어서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한다는 의미다. 인간의 도리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덕목을 꼽으라면 바로 이 ‘은혜를 잊지 않음’일 것이다. 반면, 이와 정반대되는 개념이 ‘배신(背信)’이다. 믿음을 저버리고 등을 돌리는 행위, 즉 인간관계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죄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신곡』에서 은인을 배신한 자를 지옥의 맨 아래, 아홉 번째 층으로 떨어뜨렸다. 인간의 악 가운데 가장 큰 죄가 바로 ‘배은(背恩)’과 ‘배신(背信)’이라고 본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로마 황제 시저를 배신한 양아들 브루투스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배신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절규는 단순한 개인의 탄식이 아니라, 신뢰를 저버린 정치의 비극을 상징하는 외침이었다. 이제 우리 지역 정치도 비슷한 순간을 맞고 있다. 2026년 6월 3일, 불과 7개월 보름 뒤면 다시금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새로운 광역 및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을 뽑는 지방선거의 날이다. 재선을 노리는 백성현 논산시장과 이응우 계룡시장은 지금 ‘결초보은이냐, 배신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추석 연휴 동안 들려온 시민들의 목소리는 흥미롭다. “수고했다”는 말보다 “다시는 못 믿겠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재선 가능성을 묻자 말을 아끼거나 고개를 젓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민심의 향배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굳이 여론조사를 들이대지 않아도 감이 오는 대목이다.
■ 이응우 계룡시장, 예선도 험난한 길
명절 연휴 직전, 허염 전 과장이 찾아왔다. 공무원 시절보다 훨씬 단정한 인상에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왜 정치를 시작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이응우 시장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어서요.” 그 한마디에 이미 각오가 담겨 있었다. 그는 “명품은 사용자와 제공자 모두가 동의해야 명품이 된다”며, “계룡시와 시민 모두가 만족하는 명품도시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9월 초 계룡으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이미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셈이다. 한편, 이응우 시장은 2022년 당선 이후 줄곧 ‘국방도시 브랜드화’라는 화두를 내세웠지만, 지역 체감도는 높지 않다. 시정 현안보다 정치적 판단이 앞섰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허 전 과장의 등장으로 인해 이응우 시장은 예선(공천)부터 녹록치 않은 국면을 맞고 있다. 혹여 본선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경선에서 고개를 숙일 수도 있다는 불안한 그림자가 짙다.
■ 백성현 논산시장, 가장 큰 적은 ‘자신’
백성현 시장의 최대 난관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바로 ‘본인 자신’이다. 2022년 선거 당시 그가 얻은 표심에는 감정적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언더독 효과’가 작용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그 마법은 이미 사라졌다. 그의 시정 3년을 돌아보면 성과보다 갈등이 더 많이 회자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촌 KDI 폭탄공장 설립 논란이다. 시장이라면 주민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그는 정작 시민들과 담을 쌓았다. 갈등이 아닌 협력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대립’의 구도로 몰고 간 셈이다. 재정 문제도 심각하다. 시정 곳간이 텅 비어 있는 상황에서 2027년 ‘딸기엑스포’까지 치러야 한다. 돈이 없는 행정에서 인심이 날 리 없다. 그가 재임하면서 추진했던 현안 사업, 특히 탑정호 리조트 역시 현실적 타당성보다 정치적 제스처가 더 강했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조직력에 대한 과소평가가 치명적이다. 민주당 논산계룡금산 지역위원회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당협위원장은 있지만 사실상 ‘기능 부전 상태’다. 내년 선거에서 백 시장은 혼자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반면 민주당은 황명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결집된 조직력을 발휘할 것이다. '집단지성'은 개인의 역량을 능가한다. 다수의 후보가 경쟁하며 다듬은 민주당의 집단지성은 개인 플레이에 의존하는 백 시장과는 결이 다르다. 백 시장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는 지금이라도 ‘자기 정치의 지문’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시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 행정의 흔적은 곧 ‘정치적 배신’으로 남는다. 이제라도 시민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고, 스스로의 오만을 내려놓을 때만이 일그러진 지문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결초보은’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은혜를 잊지 않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며, 시민의 뜻을 풀처럼 엮어 그 보답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치의 도(道)다. 배신과 배은의 정치가 아닌, 은혜와 신뢰의 정치가 다시 지역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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