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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논산시청 본관동은 ‘공공청사 내진성능평가용역’에서 D등급을 받았다. 지진에 대한 구조적 안정성이 ‘미흡’하다는 판정이었다. 내진보강이 시급하다는 권고에 따라, 논산시는 2021년 11억8000만 원을 투입해 내진보강공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23년 ‘정밀안전진단’에서도 여전히 D등급. 시설물 안전 등급 중 D등급은 ‘중대한 결함이 있어 즉각적인 보수·보강 및 사용 제한이 필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현재 논산시청 본관은 ‘언제라도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산시청의 일상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각 부서의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시민들이 민원을 접수하며 드나드는 그 건물은, 외견상 멀쩡하지만 내면은 이미 ‘한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논산시는 청사 신축이라는 장기 대책을 세웠다. 총사업비 1200억 원, 완공 목표 2033년. 논산시 행정의 새로운 중심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청사건립기금 258억 원을 조성해왔다. 시민의 세금이 미래의 안전한 행정을 위해 착실히 쌓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그 돈의 행방이 심상치 않다.
지난 5월 12일, 논산시의회는 「논산시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를 일부 개정했다. 발의자는 국민의힘 소속 이태모 의원과 이상구, 홍태의, 허명숙 의원이었다. 조례의 핵심은 ‘다른 회계나 기금에 융자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즉, 청사건립기금 같은 특정 목적기금도 필요하면 다른 사업에 ‘빌려 쓸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 개정의 주체가 예산 담당 부서가 아닌 의원들이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보통 이런 재정 관련 조례 개정은 집행부, 즉 예산실에서 먼저 제안하고 의회가 심의하는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이는 조례 개정의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보인다. 곧, ‘청사건립기금을 다른 사업에 즉시 전용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논산시의 청사건립기금은 총 7개의 예금계좌로 분산 예탁되어 있다. 이 중 6개 통장(144억 원)은 지난 9월 16일 중도해지됐고, 나머지 1개 통장(100억 원)은 올해 말 만기가 되면 해지해 사용할 계획이다. 총 244억 원이 움직이는 셈이다. 시는 이 자금을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연 3%대 이자’ 조건으로 빌려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공식적인 설명은 없다.
취재를 종합해 보면, 이 자금은 ‘탑정호 복합휴양단지 조성사업(75억 원)’, ‘선샤인랜드 복합문화공간(37억 원)’ 등 총 18개 사업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도비 매칭도 없이 전액 시비로 진행되는 사업들이다. 대부분이 관광, 개발, 시설 조성 등 ‘보여주기 성격’이 강한 사업들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현재 시 공무원은 D등급의 위험 건물에서 여전히 근무 중이다. 최근에는 본관 3층의 대회의실 사용을 ‘자제한다’는 분위기 속에, 대형 회의는 아트센터나 외부 공간에서 열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행정의 심장부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청사 신축기금을 해지해 관광사업에 투입한다는 것은 ‘시급한 필요’보다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 보인다.
청사건립기금은 그 이름 그대로 ‘청사 건립’을 위해 조성된 목적기금이다. 「지방재정법」과 관련 조례에 따라 용도와 관리 절차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특정 목적 외로 사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산시는 ‘융자’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논산시 재정운용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2022년 말 1394억 원이었던 재정안정화기금은 불과 2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올해 1회 추경 당시 잔액이 277억 원이었으나, 연말이면 그마저도 모두 소진될 예정이다. 곳간이 비어가는데, 청사기금마저 손을 대는 현실이다.
물론 중앙정부의 교부세 축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방교부세 배분이 줄면서 전국 지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논산 재정 악화의 전부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시정의 방향성에 있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 정책, 원칙 없이 남발된 선심성 사업, 그리고 기금의 목적 외 사용…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재정건전성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재정은 도시의 혈관이다. 그 혈관이 막히면, 사회적 약자 지원이나 복지서비스,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재난이나 경기 침체 같은 돌발 상황에 대응할 여력도 급격히 줄어든다. 결국, 시민의 삶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지금 논산시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청사건립기금의 전용이 단기적 재정 부담을 완화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선택이 가져올 장기적 결과는 분명하다. ‘미래를 위한 안전자금’을 ‘현재의 욕망’에 태워버리는 행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논산시청 백성현 시장실 벽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The Buck Stops Here)”
이 문구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문구이기도 하다. 권한이 있는 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이다. 그러나 지금 논산시의 재정 운영을 보면,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책임의 주체는 불분명하고, 결정의 방향은 시민이 아닌 ‘성과’를 향해 있다.
말론 브란도와 비비안 리가 출연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 블랑쉬는 현실을 외면한 채 욕망에 자신을 내맡긴다. 결국 그 전차는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간다.
지금 논산시의 재정 또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것은 아닌가.
청사건립기금은 단순한 예산 항목이 아니다. 그것은 공무원과 시민 모두의 안전, 그리고 행정의 신뢰를 위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흔들릴 때, 시민은 행정의 진심을 의심하게 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재정이 시민의 안전을 삼켜버리는 일… 그 전차의 브레이크를 지금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 ‘모든 책임을 진다’는 말의 실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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