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미 신간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6/01/21 [11:12]

조영미 신간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6/01/21 [11:12]

[생활시 산책] 조영미 신간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 시인도 그렇다 

 

▲ 당근문양은 일반적 삶의 무늬색이며, 바느질 흔적은 사는 모습이 서로 꿰매어짐을 상징으로 표상     ©

 

 

논산 지산동 어느 길가 건물 벽에 당근이 잔뜩 그려져 있다. 오거리에는 콩나물 국밥집이 있다. 3800원 하던 국밥이 5500원이 되었어도 손님은 여전하다. 당근, 국밥, 명아주지팡이, 쮸쮸바... 생활 속에서 접하는 것들이 멋진 시가 될 수 있을까?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오규원 시 “시라고 하면 안되나” 마지막 소절이다. 

 

논산문인협회에서 활동하며 생활시를 꾸준하게 써온 조영미 시인이 지난 가을 시집을 펴냈다.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 표제시에서 ‘당근’은 말이 좋아하는 당근이기도 하고, 중고거래의 상징어이기도 하다. “터미널국밥집”에서는  <아침밥 하기 싫어 나왔다는 여자/ 인력사무소에서 온 듯한 이들...> 국밥집 겨울 풍경을 그대로 담아다 놓았다, <산다는 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거룩해짐을 깨닫는 순간이었다>면서......

 

“글은 대중에 눈높이와 눈치에 맞춰서 써야 한다. 약간 관능적이거나 솔직한 글을 쓰는 경우 자제하라”는 시 전문가의 지적을 그녀는 배반한다. 내 경험에 타인의 감성이 개입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일상에서 흔히 놓치는 존재의 순간들을 순간 포착하며 삶의 생채기와 위로로 직조한 밥상 보자기들을 펼친다. 

 

조영미 시인이 논산논산문인협회에 가입한 때는 5년 전이다. 이번 시집은 충남문화관광재단 문학예술지원공모 선정으로 빛을 보았다. 조 시인은 30년 전 부여문화원 사비문학을 인연으로 시에 입문한 이래 부여는 물론 충주시 종합문화예술회나 논산문학회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2025년 논산문인협회는 김홍신문학관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다. 이때 조 시인은 대부분 참석했지만 조용조용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었다. 

 

▲ 일하는 직장에서 가진 소박한 출판기념회     ©

 

조 시인의 직업은 사회복지사이다. 논산하나병원에서 16년 넘게 근무중이다. 사회복지사로서 환자와 나누는 교감이 시로 녹아든다.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산다는 것은 살아오며 어질러 놓은 길에 비질하는 일”이라고 전제한다. 그녀가 일상에서 발견하고 느끼는 소재는 메모가 되고, 일과 후 기록의 과정을 거친다. “카네이션”은 일터에서 그렇게 탄생한 시 중의 하나다. 어버이날 지나면서 뒤꼍 분리수거장으로 사라지는 사랑, 사랑... 현대인 삶의 표상이다. 이런저런 삶의 편린들이 작가의 섬세하고 깊은 언어 감각을 통해 부활한다. <링거를 타고 넘어/ 환생하는 꽃들로 술렁이는 오월> 

 

시집 제목이자 대표 시 중 하나인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는 낡고 병든 자존심을 소명의 의미로 불러내어 삶의 애잔함을 소환하게 하는 잔상이다. 문학평론가 손희락 시인은 “조영미 시인은 간장 눈금을 재듯 말과 말 사이를 오가며 시를 쓴다”면서 “그의 시는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인간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다”고 평했다. 자아 삶을 파고드는 아픔을 승화하고 있고 ‘발톱’ 등 다수 작품에서 인간 본연의 내면을 성찰하는 모습 등에서 평론가는 독자에게 정독(精讀)을 권유하고 있다. 생활시라는 점에서는 공감 한 표이지만, 두세 번 읽어야 더 선명해진다는 점에서는 난해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2025 논산예술제시화전에서 시민들과 만난 작품은 ‘모닝커피’다. <예배당보다 붐비는 프랜차이즈 앞에서/ 똑같은 성배를 들고/ 한 모금의 카페인으로 구원을 받는다> 현대인들은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주고받을 구원의 메시지가 많다. 조영미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시를 통하여, 혹은 수다를 통하여.

 


                                                    

[인터뷰] 조영미의 시와 삶 이야기 "내 시의 출발점은 삶의 현장" 

 

 

 

 

이번 시집에서는 표제시보다 “삼월 말馬날”을 전진 배치하면서 말을 馬과 병치해 놓았군요. 간장 담그는 이야기와 함께, 새해니만큼 말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요즘 간장을 담그는 사람이 드물죠?^ 삼월 중 음력으로 가는 간지 중에 말날이 있는데 그날 장을 담그면 맛있고 망가지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말날에 간장을 담아요. 소날에 담그면 점성이 느른하거나 잘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해서요. 간장 담그는 날은 저절로 마음이 조신해지고 정갈해지죠. 웬지 조상님이 내려다보는 기분이고 조왕신도 내려다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간을 보지 않고 만드는 제사음식이 맛있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리 싶습니다.

 

간장 고추장 하면 어머니겠죠? 이번 시집에는 “몸뻬에 대한 사유”도 나오고 “고추 닷근”에도 몸뻬가 나오는군요. <한 줌 밖에 안 되는 엄니/ 몸뻬를 단디 동여맨 엄니> 과연 어떤 어머니인지요? 

 

연로하신 어머니는 닳디 닳은 무릎을 이끌고 해마다 고추 농사를 지으세요. 그 중 제게는 가장 먼저 말린 빛 고운 고춧가루를 보내오셔요. 가뭄 타는 여름이면 매일같이 진종일 고추밭에서 두 손 보듬고 애태우시는 어머니 손길에 눈시울로 쓴 글이랍니다.   

 

  

표제시가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네요? 여기서 당근의 함의는 무엇이며, 이 시를 통하여 독자들과 제일 교감하고 싶은 부위는 어디일까요? 

 

이 시는 무형식으로서, 다듬어진 글도 아니나 절절한 마음으로 적어본 거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처절히 움직이며 사는 모습의 재현이 아닐까도 싶어서요. 중고품이라는 시장과 그중 새로운 형태로 당근이라는 중고사이트가 성행하잖아요? 당근이란, 말(馬)이 유혹당하는 음식인 은유적인 단어로 통용되며 중고품의 유혹을 위한 풍자적인 고유명사급이 된 지 오래고요. 

특히 인력사무소 앞에 서면 사람의 유동성과 물건의 경로는 더욱 흡사해 보여요. 한 생을 거치며 온갖 궂은일을 넘어 피폐해진 심신을 뒤늦게 아끼고 고쳐가며 다시 태어나 부단히 살아가야 하는 절대적 사명이 된 제2의 진입로에서..... 끝까지 필요한 존재로서 쉬지 않고 살아갈 의지가 필요하다는 동기부여의 의미 내지 의도랄까요. 

 

여기서도 말이 등장하는군요. 해서, 표제시를 <당근은 유통기한이 없다>로 등극시킨 건가요?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세상이 던져놓은 당근을 좇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게 엄존하는 현실이죠. 이미 닳아버린 젊음과 유통기한이 없는 당근의 세계를 적절히 결탁하여, 둥지에서 당당히 내보낸 당근보다 쇠말굽 갈아 끼우고 말(馬)이 되어 살아가야만 되잖아요. 

삶의 굴레, 또는 길게 남은 노화의 길이 선연하여 공감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더불어 현시대에서 솔깃할 수도 있어서 감각적 제목을 취택한 셈이죠. 현재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군상이 느는 세태에 맞춰 일의 연속이 절대 필요한 시대 같기도 해서요. 

 

직장인으로서 낮 동안 하는 일이 만만찮을 거 같은데, 시작 활동은 주로 언제 하는지요? 

 

현재 논산하나병원 사회복지사 재직 16년 고개를 넘어섰습니다. 시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사회복지사로서 늘 환자를 접하며 보이지 않는 교감 나누는 일이 마음 아린 일인데, 한편으로 보면 얼마나 가슴 따스한 일인지도 몰라요. 

제가 하는 일은 와상환자 분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짜며 수시로 이발과 더불어 라포형성으로 보듬는 일 등이에요. 동료들은 가족보다 더 많이 함께 숨 쉬는 존재들인데,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동료애와 주어진 업무가 나를 깨우고 깨치며 새로이 살고 싶게 빚어 주는 고마운 존재더라구요. 다양한 생활 속에서 많은 영감이 얻어집니다. 낮게 걷는 길이, 제게는 저물기보다 여물어가는 길이 되는 거 같아요. 살아 움직이는 만큼 시의 소재는 산재하고, 늘 그리운 것이 시이기도 합니다. 소재를 발견하는 대로 적는 것이 이제는 오랜 습관이 됐어요. 물론 시를 다듬는 시간은 늘 퇴근 후로 미뤄지죠. 제게 시란 언제나 함께 가는 연민의 대상, 그런 거 같아요~

 

그런 시는 생활시로 분류될 거 같은데, 미학, 교과서의 서정시들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시를 왜 쓰세요? 시 쓸 때 중시하는 포인트가 무엇일까요?

 

나에게 있어서 시작행위는 또 하나의 제 가슴을 향해 이야기를 하는 일이에요. 특히 마음이 힘겹거나 우울할 때, 손 타지 않은 그대로의 형상을 보고 표현하는 일이죠. 그런 때 답답함이 승화되는 것이 느껴지면서 늘 설렌답니다. 사랑도 희열도 언제나 목마른 무형이기에, 사람은 늘 불안정한 개체이니까요.  

시 쓸 때 염두에 두는 거? 물론 있죠. 글을 쓰기 전에는 내 경험에 타인의 감성이 개입되지 않도록 조신, 그래야만 나만의 독창성이 나오는 거 같아요. 사회와 타협하는 시는 나의 시가 절대 아니라고 다짐하곤 해요. 그러고 보니 몇 가지 더 있네요, 기교보다는 읽는 사람이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데 신경을 더 쓰고요, 무형식도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표현하려 하는 편입니다. 한국어 단어의 다양한 맛 그대로 살리는 길도 동시에 고려해 보면서요. 

   

시 쓸 때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편지처럼 대상이 먼저인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이번 시에서 의식하는 대상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저는 삶의 슬프고 아린 모습, 부정적인 면이나 이면이 상이한 모습 등을 보게 되면 시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더라구요. <꽃잎 환장하게 벙그러지는 날/ 딸은 꽃구경하러/ 서울 병원으로 간다>로 시작하는  “꽃구경”은 얼마 전 딸이 두 번째의 큰 수술을 앞두고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길에 온통 벚꽃이 흐드러져 날릴 때 잠시 썼어요. ‘꽃잎처럼 웃으며 지나가리. 곧 지나갈 거야 울애기야’ 하며 가슴 저리던 기억이네요.  

“카네이션”은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부모 자식을 염두에 두면서 썼죠. “터미널국밥집”은 한겨울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찾아가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산다는 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거룩해짐을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제게는요. 

 

시에서 갑자기 철학으로 넘어온 거 같아요. 평론가가 “그의 시는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인간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소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무릎’이라는 시를 쓰고나서도 한 가닥 소회를 적어봤어요. <낮으로는 웃어도/ 밤으로는 저마다 쓸쓸하고 허접하여/ 마치 찢어진 꽃잎처럼/ 파르르 떨면서도 / 안 아픈 척/ 누구나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무릎이 뒤로 굽지 못하듯이> 

되돌아보면, 충만한 감성이 유난히 넘쳐나 주체못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 감성을 글로써 풀어내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이 못내 아쉽고, 어리석음으로 남는 거 같아요. 지나간 순간은 사라질 뿐, 어느 삶의 경우도 두 번은 없겠죠? 우리는 항상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하니까요, 것도 무작정!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리얼한 단어가 눈에 띄는데, 그중 하나가 무릎 같아요. 요즘은 삶에 부대끼는 와중에 미화, 탐미 같은 것은 밀쳐내면서 시를 쓰거나, 자기만의 세계를 가감없이 표출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런 분들에게 동료애를 표한다면요?

 

삶은 그야말로 투쟁이잖아요.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버겁기도 하고요. 동시대인으로서 다양성을 인정하며 자유분방함 속에서 서로에게 감추어진 진주를 캐낸다면 삶은 흥미로워질 거 같아요. 어느 자칭 전문 시인이라는 분이 이런 충고를 하더군요. “글은 대중에 눈높이와 눈치에 맞춰서 써야 한다. 약간 관능적이거나 솔직한 글을 쓰는 경우 자제하라.” 과연 그게 능사일까요? 그 말을 들으며 ‘저건 얼마나 주관적 고정 관념의 오류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속으로 말이죠^^.

 

시집 말미를 보니까 시만을 고집하는 거 같지 않던데, 앞으로 본인만이 그려내고 싶은 삶이나 작품세계는? 

 

일 순위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고요, 그 속에서 그리운 친구를 만나듯이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사는 일에 의미를 갖고 싶어요. 늘 부족하고 협소한 시의 자리에서 시인이라기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고도 싶습니다. 사는 일에 쫓겨 핑계처럼 시를 데면데면하게 굴며 연민만 하다 여기까지 왔지만, 시는 목마름 그대로 변함없이 언제나 함께 살아갈 길벗이죠. 차후 기회가 된다면 아무런 꾸밈없는 산문형식도 쓰고 싶고, 생활에서 느낀 사진과 시의 조화를 엮어보고 싶습니다.

 

“이번 시집은 ‘발톱’이나 예술제시화전 작품 ‘모닝커피’ 등 삶에서 체득된 생활시들이 소롯길을 걷듯이 그려지며 삶의 생채기를 아물리고 나만의 색채를 간직해 오다가, 마침 충남문화관광재단 문학예술지원공모 선정 계기로 가슴 아린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시공간이 마련되어 작은 풀잎같이 절절한 행성 하나 가만히 낳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며 시와 삶을 풀어낸 조영미 시인은, 1996년 부여문화원 사비문학을 인연으로 시와 낙서와 함께 문학지 구성원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충주 이삭문학활동 및 시화전과 학생백일장 운영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다 연고지 계기로 2021년부터 논산문학 활동 및 충주시 종합문화예술회 활동을 지속해 왔다. 올해도 논산문학지 등에 오월연가, 명아주지팡이, 뚜껑인생, 무명의 밤, 소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이진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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