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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교수(현 노스웨스턴주립대학교수)는 계룡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신도안이라는 마을 부남리 2구 (대궐터) 에서 7대 독자로 태어났다. 1남 5녀 중 다섯째로, 아버님이 형제가 없어 딸이든 아들이든 외롭지 않게 자식을 많이 둔다면서 6남매를 낳았다. 형제도 없이 외롭게 자란 아버님과 평생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그는 어려서부터 "내가 나중에 결혼해도 외아들로서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돌아 가실 때 까지 평생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하고 미국 유학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 했던 적이 잠깐 있었는데 부모님 때문에 쉽게 그 꿈마저 접었다.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여러 해 동안 할 때도, 그리고 결혼해서도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결혼 한 이후, 아이들 둘을 낳고, 부모님과 5년을 같이 살다가 미국으로 갔으니 가족을 그리워 하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충남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몇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국제교류부 (현: 국제교류원)에서 국제교류 담당자로 6년간 근무했다. 그가 담당한 업무는 모든 행정 업무 이외에 외국대학과의 국제교류 실무였다. 그 업무 중하나로 교환학생, 교수를 파견 또는 초청하는 것이었는데, 적성과 아주 잘 맞아 업무를 아주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 중 교환 프로그램을 가장 활발하게 했던 대학은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립대학이었는데, 그 대학에서 교수, 학생 10명을 매년 2주 정도 충대에 초청해서 각 해당 학과 교수, 학생들과 전공에 대한 토론회를 하고, 한국 문화를 체험시켜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서 사우스다코타 주립대학 국제교류 부장이었던 Harriet Swedlund는 교수, 학생을 데리고 충대에 6년 연속 매년 왔다. 그가 근무하는 6년 동안 충대에서는 교환학생 2명을 매년 선발해서 사우스다코타 주립대학으로 파견했다. 6년째 되는 해에 Harriet 교수님이 오셔서 그에게 하는 말이 "다른 교환학생들만 유학 보내지 말고, 기오, 너도 유학 나오지 않겠니?" 하는 거였다. 유학 오면 장학금을 교환학생이 받는 이상으로 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성실하게 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유학 제안을 한 Harriet 교수님께 감사했다. 하지만 그 때 그는 결혼해서 다섯살 된 아들과 세살된 딸이 있었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내와 많은 대화 끝에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 때 유학 갈 때 당시에는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계획이었고, 그렇게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유학 길에 올랐다. 그렇게 미국 유학을 왔을 당시 아들은 유치원에, 그리고 딸은 어린이집에 다녔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미국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임.)에 가서 아들이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선생들이 학생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두며 가르치는 분위기, 어린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 의견을 수렴하는 학습 분위기,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자기 의견을 주장하며 발표하는 분위기를 보고,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박사 학위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취직을 해 보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살겠다는 결정을 내린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손자 손녀가 미국 교육을 받고, 아들이 대학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에 좋아도 하셨지만, 반대로 이젠 아들 가족이 미국에서 영영 살 것이라는 사실에 많이 힘들어 했다. 이렇게 미국 온지 10년이 지나고, 2010년 여름 지금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학생활에서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유학 올 때 당시 내 나이 35살이었어요. 내가 박사 공부를 했던 와이오밍대학(University of Wyoming) 의 한국 유학생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학생이었지요. 적지 않은 나이에 그리고 세 가족이 딸린 가장으로서 유학을 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지요. 유학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막연하게 공부 하는 것이었어요. 박사 공부가 취직이 보장되는 일이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히 공부를 할 수 있었겠지만 새벽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우리 가족이 살았던 좁은 학교 내 학생 아파트로 돌아 올 때면 아내는 늦게까지 나를 기다리다 잠이 들어 있고, 우리 아이들도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볼 때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부담이 더 있었지요. 그래서 공부에 대한 오기가 더 생겼고, 기필코 이 어려움을 이겨 내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했어요. ▲교수님의 학창 시절은 어떠셨는지요?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학창 시절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내 학창 시절은 인생에 대한 꿈도 없었고, 그저 부모님이 먹여주고 재워 주시는 것에 만족했으니까요. 그 당시 내 인생에 대한 목표가 일찍이 있었다면 늦은 나이에 어렵게 유학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그렇게까지 힘든 시간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의 내 생활은 가족이기 전에, 친구와 직장 동료가 우선이었지요. 결혼하고 부모님과 같이 살다 보니 부모님이 아이들을 잘 돌봐 주셨기에, 특별히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집에 신경 쓸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난 밖에서 친구와 직장 동료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고, 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 다음 거의 매일 밤마다 늦게 들어가곤 했지요. 그때 당시에는 그 생활을 즐겼구요. 오죽하면 10년 전 미국에 처음와서 만 3살된 딸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가는데, 딸 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더라구요. 그만큼 한국에서 아빠 노릇을 못했던 거지요. 미국에 오니 같이 놀자고 하는 친구, 직장 동료도 없고, 공부 이외에는 다른 것 할 일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마도 공부는 다른 할 것이 없어서 한 것 같아요. (하하하…). 미국에 온지 얼마 안돼 하루는 아들 유치원에서 끝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이 나를 보더니 막 뛰어와서 나에게 안기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때 난 얼마나 당황 했는지. 그 전에는 그렇게 아들을 안아 본 적이 없었던 거였어요. 그런데, 아들은 다른 미국 아이들이 엄마 아빠한테 안기는 것을 보고 나에게로 달려와서 안겼던 것이지요. 지금은 아들과 딸을 아주 자연스럽게 안고 뽀뽀도 하고 합니다. 미국에 온 이후로 많이 가정적이 된 것 같아요. 밖에서 친구 또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릴 시간은 거의 없고,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가정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테니스, 골프, 걷기, 쇼핑 등을 즐기고 있어요. ▲미국 유학을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어학인가요? 성실함인가요? 미국 유학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우수한 학생이였던 것처럼 미국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그 자신감만 있으면 유학생활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한국 학생이 고등학교 또는 대학을 마치고 학부 또는 대학원 과정으로 유학을 오게 되면 미국 학생들만큼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언어에 대한 장벽은 있지만 미국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 보다 더 똑똑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 언어에 대한 장벽은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미국 학생이 1시간에 볼 분량의 책을 10시간에 걸쳐 보면 되고, 또 그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성실성과 근면성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있습니다. 나 또한 한국인의 근성을 가지고 유학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인생의 선배로서 ‘도전’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십시오. 많은 젋은이들은 자기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한계보다도 장래에 대한 목표와 포부를 낮추어서 설계하는 듯 합니다. "난 할 수 있다" 의 자신감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까?" 를 먼저 생각하고 본인들 스스로 의문을 제시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생을 안전하게 가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본인들 능력에 대한 한계 내에서 인생 목표를 정해 두고 그 목표를 향해서 도전하는 정신과 모습은 진심으로 아름답습니다. 또 분명한 것은 그렇게 최선을 다 하면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논산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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