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민주주의 고사시키는 ‘묻지 마’ 당원 가입

공직선거법, 사건을 말하다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15/12/01 [23:38]

[기획] 민주주의 고사시키는 ‘묻지 마’ 당원 가입

공직선거법, 사건을 말하다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15/12/01 [23:38]


사장이 호출을 했다. 업무를 보던 ㄱ씨는 ‘보고서가 잘못됐나?’라고 생각했다. 부서장을 건너뛰어 사장이 자신을 부를 일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최근 올린 보고서를 한 손에 들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실에 들어가니 사장은 종이를 꺼내 보였다. 처음엔 업무 지시서인 줄 알았다. 그도 아니면 자신이 올린 보고서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A당의 입당원서였다.


ㄴ사장은 “내 친구가 조만간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하는데, 입당원서를 받아달라고 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ㄱ씨는 “입당이요?”라고 반문했다. 사장은 그제야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했다. 사장은 친구가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할 계획인데, 당내 경쟁자보다 조직 세가 약하다며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권리당원은 당내 경선 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은 서명만 하면 되고, 당비는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당비는 본인이 대신 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ㄱ씨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돈 나가는 일도 아니고 사장이 부탁하는데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사장실을 나오고 나니 옆자리 후배가 또 사장실로 불려갔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사장 ㄴ씨는 하청 업체 직원한테도 당원 가입을 권하다가 결국 선관위에 신고를 당했다. 선관위는 직원들에게 특정 정당의 입당을 강요하고 당비를 대신 내주기로 약속한 혐의로 ㄴ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사장 ㄴ씨는 직원 30명에게 1인당 2만원씩 60만원의 당비를 대신 내주겠다고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내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당원 가입이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지난 선거를 보더라도 선거와 당원 증감 사이에는 연관 관계가 있다. 보통 선거를 앞두고 당원 가입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선거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선거용 ‘묻지 마’ 당원 가입인 셈이다. 돈을 주고받는 금권선거는 많이 줄었지만, 이런 식의 당원 배가운동은 줄지 않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선 이름만 빌려주는데 뭐가 문제냐며 단순하게 여기면 큰 착각이다. 선거법 위반이 맞다. 공직선거법상 누구든지 선거에 관해 후보자(입후보예정자 포함) 또는 그 소속정당을 위해 기부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 당비 대납은 바로 이 기부행위에 해당한다. 또 정당법상 본인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승낙 없이 정당 가입 또는 탈당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실제로 당원 가입을 강요하고 당비를 대납했다가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의 측근인 ㄷ씨는 경선 상대 후보보다 권리당원 수에서 열세에 놓이자, ‘묻지 마’ 당원 가입을 계획했다. ㄷ씨는 당직자들을 동원해 당원을 모집했다. 대신 모집한 당원들의 당비를 대납해 주었다.


ㄷ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방선거 후보 ㄹ씨에게도 당원 가입과 당비 대납을 부탁했다. “당신 선거운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ㄹ후보는 ㄷ씨로부터 200여만 원을 건네받아 당비를 대납했다. 1,000여명에 이르는 ‘묻지 마’ 당원도 가입시켰다. 그는 선거에서 기초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당 가입 강요와 당비 대납이 발목을 잡았다.


검찰은 두 사람을 특정 후보에 대한 기부행위로 보고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당내 경선 등 선거를 앞두고 어느 정당의 소속 당원이 정당에 납부해야 할 당비를 소속 당원 대신 납부하는 행위는 소속 당원에 대한 기부행위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또 “초범이지만 당원의 당비를 대납한 것은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라며 ㄹ의원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ㄹ의원은 애써 당선된 의원직을 잃었다.


정당 민주주의의 뿌리는 당원이다. 당비 대납이나 ‘묻지 마’ 당원 가입은 바로 그 뿌리를 갈아 먹는 부정행위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듯, 정당이 튼튼해야 민주주의가 꽃핀다. 정당의 당원이 되려면 적어도 여러 정당의 정책과 노선을 꼼꼼하게 비교해보고 자신이 원하거나 지지하는 정당에 직접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게 좋겠다.


※ 본 내용은 실제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을 바탕으로 극화·재구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선거법 안내 및 위법행위 신고 - 논산시선거관리위원회 ☎733-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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